[Book]〈11〉지식의 융합이 있는 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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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융합(融合)의 뜻은 ‘녹아서 하나로 합침’이다. 융합의 결과물은 잘 익어 맛있는 김치에 가깝다. 배추·고춧가루·생강·마늘·젓갈 등 다양한 재료들이 잘 버무려져 익으면 그 각각의 특징이 살아 있으면서도 전혀 새로운 맛을 낸다. 재료 본연의 맛이 녹고 익어 전혀 새로운 김치 맛을 만들어 내는 게 바로 융합이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하는 지식들이 하나의 주제에 맞게 어우러지고 녹아내리다 다시 합쳐지면 새로운 창의성이 번뜩이는 융합지식으로 재탄생된다. 잘 익은 김치처럼 풍성하고 멋진 맛과 향을 풍기는 책 6권을 찾아봤다.

문학과 융합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인문학의 대표 선수는 문학·역사·철학, 즉 문사철(文史哲)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의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사계절)는 『이솝 우화』 『신곡』 『푸른수염』 『해저 2만리』 『파리대왕』 『허삼관 매혈기』 등 문학 작품 23편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면서 새로운 의미를 되새긴다.

 문학은 상상력으로 지어낸 이야기이고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 그 바탕이다. 하지만 허구와 사실을 버무린 TV 역사 드라마가 가진 힘처럼, 역사와 문학의 거리는 가깝다. 더구나 어떤 시대에 창작된 문학 작품은 그 시대의 역사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저자에 따르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이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해적에게만 해당할 뿐 주인공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해적이 보물을 탐내면 비난받아야 하고, 주인공 일행이 보물을 찾는 것은 용감하고 의로운 행위가 된다. 양편을 가르는 기준은 국가다. 18세기에 해적들은 국가를 대리해 해외사업을 수행한 사업가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19세기 후반에는 국가 권력에 의해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이번에는 문학과 철학의 융합이다.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은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이라는 부제대로 김수영·김춘수·황동규·황지우·기형도 등의 시 21편을 통해 현대 철학의 주요 개념과 현대 철학자들이 고민한 문제들을 살핀다. 새로운 것을 강박적으로 추구했던 시인 이상과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 리오타르를 연결지으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움이 지속되면 그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일 수 없습니다. 새로움은 부단히 자신을 극복해야만 새로움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리오타르가 ‘어떤 작품도 포스트모던해야만 모던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사실 ‘어떤 작품도 부단히 새로워야만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영화와 융합

순수학문과 대중문화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흥행과 인기를 얻어 수익을 내야 하는 대중문화와 달리, 순수학문은 진리 그 자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중문화에서 순수학문의 통찰을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다. 대중문화든 순수학문이든 근본적으로는 우리 인간의 삶과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다.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영국 철학자 마크 롤랜즈는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책세상)에서 SF영화 12편을 가지고 철학적 주제와 쟁점들을 다룬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앎과 확신의 문제를, ‘터미네이터’에서 마음과 육체의 문제를, ‘스타워즈’를 통해서는 선과 악의 문제, ‘반지의 제왕’ 속에선 도덕 상대주의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밖에도 ‘에일리언’ ‘마이너리티 리포트’ ‘블레이드 러너’ 등의 SF영화 속에서 찾은 죽음과 삶의 의미 등 철학적 과제들을 성찰한다.

 이 중 영화 ‘스타워즈’를 놓고 플라톤의 형이상학과 니체의 초인(超人)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은하계를 정복하려는 다스 베이더의 사악한 욕망과 행동은 철학의 눈으로 다양하게 풀어낸다. 선을 완전한 것으로 생각한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다스 베이더는 실재성이 결여된 불안정한 상태에 가깝지만, 니체의 시각에서 보면 그는 위대한 능력으로 승화될 수 있는 초인의 잠재력을 보인다는 얘기다. SF영화를 철학자들의 사상과 연결 지어 소개하는 책은 많지만, 이 책처럼 각 영화에서 이끌어낸 하나의 질문을 가지고 철학적 해석을 펼쳐 보이는 책은 드물다.

『수냐의 수학영화관』

 김용관이 쓴 『수냐의 수학영화관』(궁리)은 수학과 영화의 만남이다. 영화 ‘인셉션’을 보면서 0차원·1차원·2차원·3차원 등을 수학적으로 정의내리고, 미국 드라마 ‘넘버스’를 보며 무질서 속 규칙을 찾는 기법인 통계를 설명한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선 가진 자는 더 갖게 되고 못 가진 자는 더 못 갖게 되는 빈익빈 부익부가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를 ‘멱함수분포’를 인용하며 질문을 던진다.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19편을 통해 수학적 사고, 법칙, 원리 등을 다루고 수학이 어떤 학문인지에 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에 관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학에는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약간의 규칙만 지킨다면 뭐든 할 수 있어요. 현실과 무관한 것 같지만 얼마든지 관련시켜 사고할 수 있습니다. 수학은 현실로부터 시작됐고, 현실을 거치면서 추상화된 것이기에 그것을 잘 해석하고 방향을 바꾸면 현실적인 활용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현실을 장난감 다루듯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유로움. 멋지지 않나요?”

예술과 융합

유홍준 교수는 그의 책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문구를 쓴 적이 있다. 이 말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그래서 예술과 인문학은 관계가 깊다. 작품 속에 투영된 당대의 역사와 사회상을 알면 감동이 달라진다.

『조선 풍속사 1: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

 한문학자 강명관의 『조선 풍속사 1: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푸른역사)는 조선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그림 25점을 실마리로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과 풍속을 살핀다. 예컨대 이런 방식이다.

 “단원의 그림 ‘타작’을 볼 때마다 자리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내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땅은 원래 경작하는 것이고, 경작하는 사람만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양반과 마름은 경작하지 않고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정말 해괴한 일이 아닌가. 소를 부리며 땅을 갈고, 가족이 날라 오는 새참을 먹고, 가을에 도리깨질을 하는 소농(小農)이야말로 인류를 이제까지 살려온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의 농민과 농촌은 어떻게 되었는가.”

『미술관 옆 인문학』

 박홍순의 『미술관 옆 인문학』(서해문집)은 자유, 동양과 서양, 이성, 빈곤, 일상성, 자아 등 6개 범주로 나누어 모두 35편의 글이 실려 있다. 각 글에는 미술 작품 두 편이 실려 있고 같은 주제를 다룬 인문고전의 본문 일부가 인용되어 있다. 미술, 사상(思想), 역사, 그리고 인문고전 등을 입체적으로 구성해놓은 셈이다. 화가 고흐는 생 레미에 머무르던 시절 정신병원에 갇힌 때가 많았다. 그 시절인 1890년에 그린 ‘죄수들의 원형 보행’이라는 그림에서 죄수들은 감시를 받으며 좁은 공간을 빙빙 돈다. 그 모습은 고흐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서양의 근대화가 감시와 처벌을 통하여 인간의 신체를 길들이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감옥은 범죄자 수용소가 아니라 개인이 국가 권력의 틀 안에서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강제하는 장치이다. 제러미 벤담(1748~1832)이 말한 판옵티콘, 즉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지만 죄수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힘든 원형 감옥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CCTV, 위치확인서비스, 개인정보 유출 등 다양한 기술의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고흐의 그림을 통하여 미셸 푸코의 사상과 현대 사회의 문제까지 들여다본다.

글=표정훈 출판평론가 겸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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