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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수원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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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백씨는 수원단일본. 75년 국세조사에서 전국에 5만l천5백35가구, 25만여명. 인구순위로 27위에 올라있다.
시조는 신라 선덕왕 원년(780년) 당나라에서 귀화해 왔다는 백자경이다.
그의 후대 기록이 끊겨 백씨들은 그의 14대손으로 전하는 백창직을 중시조로 그로부터 세계를 헤아린다.
후대에서 10여파로 갈려 더러 본관을 따로 일컫기도 했으나 모두 한할아버지 자손.
역사상 백씨의 이름을 처음 드높인 인물은 고대의 유명한 유학자 백전정.
우리나라 주자학의 개척자인 안향의 수제자인 그는 충렬왕 24년 연경(현북경)에 충선왕을 따라가 본바닥에서 주자학을 깊이 연구하고 돌아와 고대에 주자학의 꽃을 피웠다.
익재 이제현이 그의 학맥을 이어 조선의 유학에까지 연결된다.
백석정의 학문에서 드러나듯 백씨는 역사상 학문과 예술의 가문으로 더욱 빛을 냈다.
담암 백문새(고대공민왕·정당문학)·휴암 백인걸(조선선조대·대사헌·우참봉)·옥봉 백광동(조선조대·시인)등이 이같은 백씨의 학연의 맥을 잇는 높은 봉우리들이다.

<백자경,당>서 귀화
백문새는 강경한 배불논자로도 주목을 끌였으며 문집「담암일경」 이 전한다. 백인걸은 조선중엽 중종∼선조대의 명신. 조광조의 문인으로 기묘사화의 참변에 스승과 동문들들 다잃고 금강산에 들어가 학문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뒤늦게 마음을 고쳐 대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선조때 이조참판·대사헌·우참봉에까지 올랐다. 성격이 강직하고 소신이 굳어 조정의 권신들을 거리낌없이 탄핵했으며 동서당쟁이 시작되자 극력 그폐해를 논해 말렸으며 속곡과 같이 군비강화를 주창하기도 했다.
워낙 청렴해 벼슬을 그만두자 끼니조차 끓이지 못할 정도여서 조정에서 쌀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사후 청백사에도 뽑혔다. 우계 성혼이 바로 그의 제자.
그의 형 인호와 4촌형제 인영·인웅이 모두 문장에 뛰어나 「사백문장」으로 불렸다 한다. 4형제의 이름이 영·웅·호·걸이다. 이들 4형제의 자손이 조선조에서 가장 융성했다.
광해군때 직제학 백유성은 휴암의 아들.
옥봉 백광동은 고죽 최경창·손각·이달과 함께 「삼당」으로 불린 시인. 특히 당시에 능했었다. 그의 형인 백광홍은 「관서별곡」을 남겨 우리 국문학사에 기록됐고 아들 백진남도 당대의 시객으로서 명성을 떨친 인물. 조선조에서 백씨는 모두 80명의 문과급제자를 냈다.
백락관은 한말 척왜의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참형을 당했다.
조선조의 백씨가에 가장 이채를 띤인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도사 백홍준이다. 평북의주출신의 그는 고종13년 (l876년) 한국인 최초로 신교교인이 됐고 1888년 최초의 전도사가 되었다가 1892년 사서간행혐의로 잡혀 옥사, 첫 신교순교자가되는등 우리나라 신교사의 첫머리에 이름을 남겼다.
그가 개신교를 씨뿌린 평안도는 이후 우리나라 신교의 모밭이 됐었다.
일제암흑기 백씨가는 백정기의사, 3·1운동대표 33인의 한사람인·불교대표 백용성등 선각을 배출했다. 동경2·8독립선언의 주동인물인 백관수는 동아일보사장을 거쳐 해방후 제헌의원을 역임하며 한민당의 중심인물로 활약하다 불행히도 6·25때 납북됐다. 6·25때 납북된 백씨 인물은 당시 의학계의 태두이던 백인제, 국회의원 백상규씨가 있다.

<청백사 백인걸도>
현재 백병원과 인제의대는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유업을 이은 것.
전민주당 최고위원 백남오씨도 정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현대의 백씨들은 전연세대총장·문교장관 백락준박사, 전국무총리·국회의장 백두진씨,전육군참모총장·교통장관·주불대사를 지낸 백선엽예비역대장등 각계에 화려한 포진이다.
역대로 학계의 맥이 우세하던 백씨 인맥은 해방후 무문에서 더 기세를 떨쳐 백번엽대장, 백대장의 친동생인 백인엽중장과 백석주대장·백선진·백문·백남진·백남태소장등 18명의 장성을 냈다.
그중 백선진소장은 재무장관도 역임했으며 백인엽중장은 예편후 인천에 선인학원을 설립,국내굴지의 사학으로 육성했으나 한때 검찰의 사학비리 수사로 학원을 국가에 헌납하는 풍파를 겪였다. 최근 문교부는 학교를 설립자에게 되돌려주었다.
백철씨가 문학계의 원로로 꼽히며 피아니스트 백악호, 교육학자 백현기,평론가 백기완,만화가 백인수씨등도 알려진 이름.
제3공화국의 공화당 4역이었던 백남억씨는 현재 일선에서 물러나 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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