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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자꾸만 배고플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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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출출한 건지, 그냥 먹고 싶은 건지, 입이 심심한 건지. 뇌에서는 언제나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오지만 정작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정체 모를 식욕, 그 시작과 끝을 파헤쳐야 다이어트라는 게임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도저히 먹는 걸 참을 수 없어요.” 다이어터들에게 자주 듣는 하소연이다. 식욕을 다스리면 자연스럽게 살이 빠질 텐데 문제는 그 식욕을 떨쳐버리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식욕을 조절하기 위해 식이노트 기록, 명상, 자기최면 등 갖가지 노력을 기울여 보지만 언제나 무너지고 나서 ‘역시 난 의지박약인가 봐’라는 씁쓸한 자학으로 마무리했다면 지금, 여기를 주목하길. 오늘은 이 죽일 놈의 식욕 그리고 그것을 휘어잡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포만감, 엄청나게 복잡하고 믿을 수 없게 과학적인먼저 한 가지 사실부터 확인하자. 식욕이란 생각보다 복잡한 녀석이다. 누군가는 단순히 의지력의 문제로 치부하기 쉽지만 식욕은 심리학적 원인뿐 아니라 생물학적 원인까지 복잡하게 얽힌 문제다. 식욕의 정체를 알기 위해 먼저 그의 쌍둥이 동생인 포만감부터 만나보자. 우리가 식욕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배가 덜 부르다’는 뜻이고 포만감이 온다면 식욕도 사라질 것이다. 인간은 어떨 때 포만감을 느낄까?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만감을 결정 짓는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공복 혈당’. 우리는 오래 굶으면 허기지고 무기력해진다.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당 떨어졌다’는 상태가 되면 먹을거리에 대한 갈망이 심해진다. 반대로 혈당이 높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먹을 것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진다.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를 살펴보자. 먼저 병원에 입원해서 혈당을 올려주는 수액 주사를 맞는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배고픔이 덜하다. 다음은 ‘물리적인 신호’다. 밥을 먹다 보면 복부팽만감을 느끼게 된다. 내장의 물리적 팽창 그 자체를 인지해 배가 불렀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 포만감을 결정하는 것은 내장에 들어찬 음식물의 무게와 부피다. 세 번째는 ‘화학적 신호’.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뇌를 비롯한 몸의 주요 부위는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해 의사소통을 한다. 현재까지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가운데 포만감과 관련된 것으로는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는 그렐린, 충분한 섭취가 이뤄졌다는 신호를 보내는 렙린, 음식이 들어오면 소화효소를 분비시키며 반대로 뇌에 ‘음식이 가득찼다’는 신호를 보내는 콜레시스토키닌 등이 존재한다.

망가진 신호체계건강하고 자연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신호체계들이 몸 안에서 정상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음식을 적당히 먹어서 혈당이 올라가면 포만감이 느껴지고 식욕도 사라질 것이다. 위장이 적당히 차면 배가 부르다고 느껴서 먹는 것을 멈출 것이고. 음식물이 장으로 넘어가면 렙틴과 콜레시스토키닌이 분비돼 뇌가 배부르다고 느껴야 정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익히 느껴왔듯이 내 몸은 멈추지 않고 폭주하는 것일까? 이미 포만감과 식욕을 관장하는 몸 안의 신호체계가 망가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어디가, 어떻게 망가졌을까? 힌트는 ‘스키너의 상자’ 속에 들어 있다. 심리학에서 유명한 동물 실험인 스키너 박사의 흰쥐 실험에서 다이어트로 가는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당시 하버드 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버러스 프레데릭 스키너 박사가 고안한 실험장치로 상자 안에 쥐가 먹이를 얻기 위해 누를 수 있는 레버나 막대가 달려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조건을 바꿔가며 쥐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실험의 결론은?

음식의 효과는 약물과 비슷하다
음식이 마약과 같다는 걸까? 다소 섬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행복감이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뇌에선 행복 호르몬이라 할 수 있는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게 되고 이는 뇌를 함정에 빠트린다. 이 같은 반응은 각종 약물을 주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밥을 먹을 때 뇌가 활성화되는 부위(시상하부)는 중독성 약물을 주입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같다. 한마디로 음식과 약은 서로 경쟁관계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에 딱히 음식을 먹고 싶은 식욕이 없어지고 살이 빠지게 되는 것!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음식물이라고 다 똑같은 행복감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유독 쾌락중추를 강하게 자극하고 갈수록 더 큰 자극을 원하도록 갈망하는 두 가지의 맛이 있으니, 바로 단맛과 짠맛이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실험에서 나트륨을 맛본 쥐들의 뇌는 쾌락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고 갈수록 더욱 더 짠맛을 원하게 됐다. 단맛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 뇌 역시 행복을 느끼고,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자극이 강한 음식물에 노출되고 쾌락의 홍수에 빠진 뇌는 정상적인 포만감이나 식욕체계를 잊고 폭주하기 시작한다.

금연 시도 프로그램의 교훈멈출 수 없는 식욕이나 과식을 통제하는 것은 약물중독에 맞서 싸우는 것과 비슷하다. 단순히 ‘나는 할 수 있어, 해야만 해’라는 의지력의 싸움이 아니란 말이다. 좀 더 과학적이고 스마트한 접근이 필요하다. 약물이라는 표현은 다소 섬뜩하니 좀 더 가까운 담배를 예로 들어볼까? 줄담배를 피우던 골초가 어느 날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 하루아침에 뚝딱 금연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반나절도 못 가 금단 증상에 시달릴 것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금연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니코틴 패치를 붙이면 금단 증상이 가라앉는다. 담배 안의 니코틴 성분을 꾸준히 공급받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공급이 끊겼으니 몸은 반항을 할 수밖에 없다. 이때 소량의 니코틴 성분을 피부로 흡수시켜 주는 패치를 붙이면 몸이 다소 진정된다. 그러나 몸이 진정되면 심리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손과 입이 허전하다. 늘 하던 동작을 안 하려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심심하다. 그래서 입에 씹을 거리라도 주자고 껌을 씹기 시작했다. 정작 최대의 위기는 화장실에서 만나게 된다. 변기에 앉으면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언제나 볼일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게 습관이었는데…. 다음부터는 신문이라도 들고 들어가야지 원.

음식 중독
담배를 끊느라 고생한 어느 무명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반적으로 동원되는 다양한 방법론이 소개돼 있다. 니코틴 패치는 어떤 뜻일까? 원인을 단번에 제거하지 말라는 얘기다. 하루아침에 뚝딱 중독에서 벗어날 사람이라면 애초에 중독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번에 뿌리를 뽑겠다는 극단적인 방법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빠른 포기를 불러온다. 자,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단숨에 먹는 빈도와 양을 줄일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잔 얘기다. 금연하는 중간에 입과 손이 심심해서 고생했던 얘기는 어디와 대응될까? 바로 구강대체행동이다. 결국 먹는 것은 입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다른 목적으로 입을 사용하고 있는 한 음식을 먹게 될 가능성은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대체행동으로 뭐가 있냐고? 껌 씹기, 말하기, 물 마시기 등이 되겠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고통에 시달리는 얘기는 어디에 대응될까? 바로 조건반사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우리는 특정 환경이 조성되면 조건반사적으로 먹을 것을 찾게 된다. 극장에 갈 때마다 팝콘과 탄산수, 버터구이 오징어를 먹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볼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먹을거리를 찾게 된다. 특정 조건을 만들어놓고 그 조건에 맞춰 먹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언가를 자주 먹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선 해당 조건이 되는 환경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새로운 보상을 빨리 구상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흡연자의 경우 ‘화장실에 들어갈 때 담배가 아니라 신문을 갖고 들어간다’는 새로운 조건을 추가해 흡연욕구를 억제했다. 우리도 음식을 먹어서 즐거움을 얻었던 시간에 음식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보상체계를 찾아야 한다. 만화책, 게임, 수다와 같이 음식물을 대신해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쾌락중추를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보상 말이다.

망가진 식욕 신호체계 복구이런 행동과 조건을 수정해 음식물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보자. 하지만 식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 바로 망가진 포만감-식욕 신호체계를 복구하는 작업이다. 그 출발은 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자극을 주는 음식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다. 일단 딱 두 가지만 잡아보자. 설탕과 소금! 금식을 하면서 식사량을 반으로 줄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을 것이다. 금연 초기에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점차 농도를 줄여나가는 흡연자처럼, 처음엔 평소의 식사량을 유지하되 덜 짜게 먹고 디저트나 주전부리로 먹던 단 음식의 빈도를 줄여나가는 식으로 차차 머릿속의 신호체계를 흔드는 과도한 자극을 줄여나가자. 여기에 조건반사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을 피하면서 새로운 유희 거리를 찾아나간다면 식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생각보다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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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김미구 엘르 기자, 글=남세희. 디자인=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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