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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갑에 500만원 카드 3장 … 티슈통엔 현금 300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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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모뉴엘 박홍석 대표가 금품을 건넬 때 사용한 물건들. 담뱃갑에는 최대 10장의 기프트카드(왼쪽), 티슈통에는 5만원권 3000만원(가운데), 와인 상자에는 4000만~5000만원을 담아 줬다고 한다. [사진 서울중앙지검]

‘외제 담뱃갑·비누상자·와인상자·티슈통….’ 평범한 생활용품들이다. 하지만 중소 가전업체 모뉴엘 박홍석(53·구속기소) 대표에게는 금품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던 것으로 25일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3년 말 서울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무역보험공사 정모(48) 영업총괄부장 등 3명을 접대했다. 접대비만 1200만원이 나왔다고 한다. 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당시 모뉴엘의 대출 업무를 맡고 있던 정 부장에게 외제 M담배를 한 갑 건넸다. 그 안에는 500만원짜리 기프트카드(무기명 선불카드) 3장이 들어 있었다. 정 부장은 이런 식으로 미화 8만5000달러와 기프트카드 2500만원어치 등 모두 1억18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특가법상 뇌물)를 받고 있다. 비누상자에 넣어 돈을 전달한 적도 있다고 한다. 정 부장은 지난해 말 모뉴엘 파산 직전 미국으로 도주했다. 검찰은 그를 기소 중지했다.

 박 대표가 지난해 4월 한국무역보험공사 조계륭(61·구속기소) 전 사장에게 현금 3000만원을 건넬 때는 티슈통에 담아 건넸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이 시연해 보니 티슈통에는 5만원권으로 최대 5000만원이 들어갔다. 수사 관계자는 “5만원권을 다발로 나눠 3000만원을 담은 뒤 빈 공간은 휴지 등으로 채워서 줬다”고 전했다. 이를 포함해 조 전 사장은 기프트카드·신용카드·계좌송금 등으로 91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뇌물수수·변호사법 위반)를 받고 있다. 수출입은행 서모(55) 비서실장에게 금품 로비를 할 때는 와인상자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 실장은 한 번에 4000만~5000만원씩 총 9700여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가법상 뇌물)를 받고 있다. 박 대표는 또 모뉴엘의 법인카드를 직접 줘 사용케 하거나 가족 명의의 계좌로 돈을 송금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로비 대상자를 회사 고문으로 등록시켜 고문료를 주거나 자녀를 모뉴엘에 취직시킨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모뉴엘은 한때 연매출 1조원을 올리며 ‘강소(强小)기업’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사기 대출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지난해 10월 파산했다. 대출 규모는 시중은행 10곳에서 3조4000억원이다. 2007년부터 7년간 수출한 것처럼 서류를 꾸민 뒤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받는 수법을 썼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김범기)는 이날 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 임직원 등 이 사건 관련자 14명을 재판에 넘겼다. 대상자는 무역보험공사는 조 전 사장 등 전·현직 임직원 6명,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서 실장 등 2명이다. 또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박 대표로부터 현금 3000만원을 받은 서울 역삼세무서 과장 오모(53)씨 등 2명은 구속기소됐다. 박 대표 등 모뉴엘 전·현직 임직원 4명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 관계자는 “국책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비리로 인해 중소기업 수출을 장려하는 수출보증제도의 근간이 크게 훼손됐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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