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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하얀 계절의 빨간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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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2월 가장 당도가 높아 맛이 좋다는 딸기 요리는 먹는 사람의 입은 물론 보는 눈도 만족시킨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딸기 초코 퐁뒤, 딸기 크림 생맥주, 딸기 젤리, 이탈리아식 디저트 딸기 파나코타, 딸기 티라미수, 딸기 찹쌀떡, 딸기 피자. [강정현 기자]

딸기는 ‘봄 과일’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봄에 딸기 생산량이 가장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맛으로 따지자면 단연 ‘겨울 딸기’다. 봄보다 열매가 더 천천히 여물어 축적되는 양분이 많아서다. 농촌진흥청이 수확 시기별로 분류해 딸기 품질을 조사한 결과 겨울철 딸기의 평균 당도는 12.5브릭스로 봄철 딸기 평균 당도 10브릭스보다 2.5브릭스나 높았다. 그래서인지 1월이 되면 레스토랑이나 디저트 카페에서는 겨울 딸기로 만든 요리를 하나둘 내놓는다. 그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이맘때 먹기 딱 ‘적기’인, 이맘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겨울 딸기’ 요리들을 만나봤다. 

 ‘딸기 피자’. 혹시 메뉴판을 잘못 본 건 아닌지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메뉴다. 피자 도우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딸기들.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딸기 과육이 입안에 퍼지며 상큼함이 감돈다. 몇 해 전부터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하나둘 내놓기 시작한 이 딸기 피자는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진 ‘겨울철 별미’다.

 서울 강남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이해브어드림(I have a dream)’의 딸기 피자는 딸기즙을 넣은 분홍빛 도우에 딸기 퓨레를 바르고, 피자 치즈와 딸기를 얹은 뒤 슈거 파우더를 뿌려 완성한다. 딸기가 오븐에 들어가 열을 받으면 시큼한 맛이 줄고 당도가 올라가는데 이때의 온도 조절이 맛을 좌우한다. 아이해브어드림 이승진 대표는 “손님 10명 중 8명은 딸기 피자를 찾는다”며 “처음에는 디저트 메뉴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손님들이 메인 음식으로 더 많이 주문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안 와인 레스토랑 ‘마노디세프’에서도 최근 겨울철 한정 메뉴로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피자’를 선보였다. 크림치즈 위에 신선한 루콜라와 딸기가 가득하다. 돌돌 말아서 입에 쏙 넣어 먹으면 된다.

 ‘찹쌀떡~ 메밀묵~.’ 겨울밤이면 으레 밖에서 들려오던 추억의 소리다. 특히 달달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의 찹쌀떡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간식거리다.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딱 걸리게 만드는 하얀 찹쌀 고물에 진한 팥 앙금이 일품이다. 최근 서울 시내에는 ‘과일 찹쌀떡’ 집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한라봉·자몽·청포도·키위 등 안 들어가는 과일이 없지만 딸기가 들어간 찹쌀떡은 과일 찹쌀떡 집 주인들이 입을 모아 강력 추천하는 ‘요새 먹기 딱’인 찹쌀떡이다.

 사실 과일이 들어간 찹쌀떡의 원조는 일본이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모찌 이야기’를 운영하는 김민수씨는 5년 전 일본에서 과일 찹쌀떡을 처음 맛봤다. 목욕을 하고 나오는데 목욕탕 바로 옆 리어카에서 과일이 들어간 찹쌀떡을 팔고 있었다. 주머니 속 잔돈을 털어 사먹어 보니 맛이 좋았다. 알고 보니 리어카 주인은 3대째 떡집을 운영하는 찹쌀떡 장인이었다. 김씨는 리어카 주인에게 3개월간 비법을 전수받아 3년 전 가게 문을 열었다. 1~2월 가장 반응이 좋은 건 역시 딸기 찹쌀떡이다. 김씨는 “여름에도 강원도 농장에서 딸기를 구입해 찹쌀떡을 만들지만 ‘겨울 딸기’ 찹쌀떡 맛은 절대 못 따라간다”고 말했다.

겨울 딸기를 듬뿍 넣어 만든 딸기빙수와 생딸기 막걸리.

 ‘빙수’는 여름철 대표 디저트라지만, 겨울 딸기가 곁들여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얀 우유 얼음에 빨갛게 잘 익은 딸기가 그득 올라가 있는 딸기 빙수는 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한다.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곱게 갈린 얼음은 부드럽게 넘어가고, 딸기의 과육은 씹을수록 풍부한 맛이 난다. 비타민이 풍부한 딸기를 우유 얼음과 함께 먹으면 칼슘도 보충된다고 하니 일석이조다. 디저트 카페 ‘설빙’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제철 딸기를 가득 올린 생딸기설빙을 시즌 메뉴로 내세웠다. 현재 전체 디저트 메뉴 중 압도적으로 제일 잘나가는 메뉴다. 홍익대 앞 딸기 케이크 카페 ‘피오니’도 소문난 딸기빙수 맛집이다. 딸기빙수를 시키면 연유 얼음이 소복하게 쌓인 그릇과 딸기가 담긴 그릇 두 개를 내오는데, 얼음이 흘러내리지 않게 잘 비벼 먹는 것이 포인트다.

 상큼한 딸기 셔벗을 깔고 딸기를 층층이 쌓아 생크림까지 올린 딸기 파르페도 매력적이다. 최근 딸기 파르페 트렌드는 먹다 질릴 정도로 딸기를 많이 올려주는 것.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 ‘카페 드 파리’의 ‘봉봉 시리즈’가 그렇다. 딸기·망고·체리봉봉 등 무엇을 시키든 풍성하게 과일을 올려주는데, 카페 주인이 특허 출원까지 한 메뉴다. 특히 딸기봉봉은 겨울철부터 딱 3월까지만 맛볼 수 있다.

 주류(酒類) 업계에도 겨울 딸기는 빠지지 않는다. 술은 써서 못 마신다는 사람들도 ‘술술’ 넘길 수 있을 만큼 맛도 부드럽다. 홍익대 앞 이자카야인 ‘스가타모리’에서는 딸기 크림 생맥주를 판다. 아이스크림 맥주라고 불리는 ‘기린 이치방 프로즌 나마’의 포인트인 얼린 거품에 딸기를 갈아 넣었다. 그래서 거품이 분홍색이다. 맥주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딸기 향이 입 안에 잔잔하게 남는다.

 생딸기와 막걸리의 궁합도 나쁘지 않다. 생딸기를 갈아 막걸리와 섞어 내오는 딸기 막걸리의 고운 빛깔은 ‘딸기우유’를 연상시킨다. 맛도 달콤하면서 술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수가 없는 건 아니니 술 약한 사람들이 계속 마시다가 저도 모르게 취해 버리는 ‘앉은뱅이 술’의 전형이다. 서울 노원역 인근 술집 ‘시오코’는 딸기와 얼음, 막걸리를 함께 갈아 슬러시처럼 즐기는 딸기 막걸리로 인기몰이 중이다.

 호텔 로비 라운지 한가운데 마련된 초콜릿 분수, 그 아래 선반에는 제철 딸기들이 가득 쌓여 있다. 양옆으로는 딸기 케이크·마카롱·푸딩·샌드위치 등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돼 있다. 셰프가 즉석에서 딸기에 캐러멜 시럽과 브랜디를 섞은 ‘딸기 플람베’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은 지난 16일 딸기 뷔페를 시작한 이후 하루 평균 약 400㎏의 딸기를 소비하고 있다. 전남 담양 산지에서 직송한 ‘봉산 딸기’가 주재료다.

 매년 겨울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호텔 딸기 뷔페들도 하나둘씩 문을 열고 있다. 1인당 평균 3만~5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름난 딸기 뷔페들은 예약 없이 입장하기 어려울 정도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외에도 쉐라톤 서울 다큐브 시티 호텔이 지난 3일부터 딸기 디저트 뷔페 ‘올 어바웃 스트로베리’를 열었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도 1월 딸기를 이용한 ‘스트로베리 페스티벌’을 15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친구와 함께 딸기 뷔페를 찾은 김영주(27)씨는 “과일 중 딸기를 제일 좋아하는데 음식 종류도 많은 데다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어 앞으로도 이맘때쯤 되면 종종 방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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