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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관절염 생길 만큼 열공 … 최고령 연수원생, 변호사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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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환갑이 넘은 나이에 대형 로펌 변호사로 새 출발하는 정진섭 전 의원은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정진섭(63) 전 국회의원이 다음 달부터 대형 로펌 변호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2013년 최고령 연수생으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그는 지난 19일 연수원을 수료했다. 4학기 변호사시보(試補) 실무연수 중이던 지난해 말 일찌감치 법무법인 ‘광장’의 변호사로 채용됐다. 33년 만에 꿈을 이뤘다.

 정 전 의원은 1972년 법조인이 되겠다며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81년 제23회 사법시험 2차까지 합격했지만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재학시절 유신정권 반대 시위를 한 경력이 걸림돌이었다. 이듬해 재도전했으나 최종면접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84년 대학 졸업 후 고향인 경기도 광주로 돌아간 정 전 의원은 정치권에 투신했다. 2005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17대 국회의원에 당선했고 18대에 재선에 성공해 내리 8년간 의정생활을 했다. 19대 총선에 불출마한 그는 못 다 이룬 꿈 실현에 나섰다.

 이미 정 전 의원은 2008년 사시 합격증을 받아놓은 터였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법무부에 유신 반대시위 경력으로 사시에 불합격한 이들에 대한 불합격 취소조치를 권고한 덕분이었다. 그는 재작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해 꼬박 2년을 두꺼운 법전과 씨름했다. 정 전 의원은 26일 “기숙사에 들어가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공부만 했다. 솔직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첫 학기부터 고비가 왔다. 연수원 시험은 직접 손으로 글을 써 답안지를 내야 한다. 이를 수십 페이지씩 쓰다 보니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엄지손가락을 못 쓸 지경이 됐다. 정 전 의원은 “어떻게 들어온 곳인데 포기하겠느냐”며 “펜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글을 쓰는 방식으로 버텨냈다”고 회상했다.

 ‘광장’ 취업에는 그의 적극성이 한몫했다. 정 전 의원은 “의원시절 환경·노동·경제분야 법안을 발의한 경력을 바탕으로 국회에서 만든 법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확인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 게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법과 현실을 현장에서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법과 현실 간의) 괴리가 보이면 ‘친정’인 정치권에 전달해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늦깎이 법조인의 각오에 힘이 넘쳤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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