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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홍구 칼럼

정치와 정치학의 한계, 올랑드와 피케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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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새해는 불안 속에서 출발했다. 신년을 맞는 즐거움보다 불안이 팽배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치의 부실, 또는 마비에서 비롯된 광범위한 실망감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우선 일차적 책임은 정치인, 특히 정치지도자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경제·사회·환경·문화 등 어느 영역의 문제이든 그 원초적 원인이나 해결책은 결국 정치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는 광범위한 공론이 정치인들의 책임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무쌍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 할 수 있는 정치의 위중한 병세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유의 방도와 수순을 처방해야 하는 책임은 고전적 전통에서 지목되어 온 대로(아리스토텔레스, 맹자) 정치학자들의 몫이다.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도한 자만심이나 또는 정치에선 세련된 이론보다는 마구 밀어붙이는 힘이 상책이라는 원시적 착각에 사로잡혀 학자들의 진단이나 처방을 무시했던 사례를 역사에서 빈번히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와 정치학이 함께 부실화되는 가장 일반적 이유는 학문적 이론과 실제적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원초적 간격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중사회에서 펼쳐지는 민주정치 시대에는 학자들의 연구가 진단 차원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구체적인 데 비해 처방 차원에선 정치인들이 활용하기에 극도로 모호하거나 실용대가(代價)와 부작용이 과도했던 경우가 허다했다.

 한국의 경우 2012년 대통령선거의 성격과 결과를 좌우했던 ‘경제민주화’란 선거공약이 모호성과 실천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제시된 정책의 대표적 예다. 경제민주화는 분명 시대적 요구였기에 여야가 공히 내세운 정책목표였으나 보수여당 후보에게는 새로운 진취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상대적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효과적 공약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단순한 구호가 아닌 진정한 정책목표였다고 하면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면밀하게 검토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당선자가 취임 이후에 직면한 내외환경은 경제민주화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제반여건이 적절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신년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극적인 에피소드는 학문적 연구에 입각한 상황진단과 처방이 실제적 국정운영의 여건과 순조롭게 연계되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이미 널리 보도된 대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일관되게 비판해 온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가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여 결정을 거부한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피케티 교수가 2012년 대선에서 사회당후보 올랑드의 당선을 지원했던 것은 21세기의 세계, 특히 프랑스가 당면한 최대의 문제는 불평등이라는 데 두 사람이 입장을 같이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만 유로 이상의 소득자에게 최대 75%의 세금을 부과하는 누진세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던 올랑드 대통령이 부유층 증세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피케티는 실망을 감추지 않은 채 훈장을 거부했다.

 불평등의 해소라는 정책목표에는 함께 동의하면서도 피케티의 학자적 견해와 국가운영의 책임을 맡은 올랑드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데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다. 국가운영은 종합예술이기에 경제적 불평등에 더한 수많은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앞서 지적한 대로 올랑드와 같은 국가운영의 책임자들에게는 각각의 분야별 상황진단과 정책처방보다는 종합적 관점에서 가장 합리적 수지타산을 거친 처방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는 그러한 종합적 판단의 필수적인 고려사항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지지에 입각한 권력수입 없이는 권력지출, 즉 정책의 효과적인 집행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올랑드의 경우는 국민의 지지율이 가장 낮은 대통령으로 극우에 위치한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에게도 뒤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정치적 행운이라고 할까. 전혀 예기치 못하던 ‘샤를리 에브도’ 테러라는 돌발사건으로 프랑스 국민의 자부심과 애국심이 발동되고 올랑드는 그 중심에 서게 되었다. 한때 10%대였던 지지율이 40%로 수직 상승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앞날에는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동시에 실현하느냐는 태생적 과제에 더해 다문화·다종교 사회를 어떻게 형제적 우애가 충만한 공동체로 만들어 가느냐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정치와 정치학의 한계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프랑스의 시련과 영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