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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린재 잡는 노린재 … '해충 빅데이터' 구축 생물농약 방제법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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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훈 충남대 교수가 천적노린재류를 보여주며 농업해충 및 생물학적농약으로 사용되는 천적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은나 객원기자

생물분류학을 최초로 시작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신학을 연구했던 다윈 등이 분류학을 연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집 뒤 공터 풀밭에서 곤충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이 곤충학자가 됐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끊임없는 연구로 새로움에 도전했다. 충남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응용생물학과 정성훈 교수 이야기다. 그는 인문학과 곤충학을 융합연구해 곤충들의 생물학적 특성을 예측하고 보다 활용가능성이 높은 분류군과 생물종을, 농업과 생물학적농약 방제법에 제시했다. 그리고 제1회 한광호농업상 농학연구인 부문에서 그 공을 인정받았다. 충남대 연구실에서 정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 한마디.

 “매우 영광이고 뜻밖의 소식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 분야에 입문한 지 석사부터 시작해 정확히 10년이 됐다. 그간 내 연구에 빠져서 정신없이 채집하고, 관찰하고, 실험실에서 연구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사실 이 연구 분야는 1~2가지 과학적 성과로 농업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대신 장기간 데이터 축적을 통한 생물학적 기초자료가 근간이 돼 농업에서 응용할 수 있는 기본정보를 제공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이번 농업상 농학연구인상을 수상을 하게 돼 개인적인 의미도 남다르고, 나와 같이 묵묵히 자기 분야에서 연구하는 분들에게도 큰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돼 매우 기쁘다.”

 -곤충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아시다시피 나는 국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원을 문과에서 이과로 전향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데 어릴 적부터 집 뒤 공터풀밭에서 곤충 관찰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집에 가져와 키운 곤충도 매우 많았다. 대학 졸업 무렵 가장 좋아하는 곤충을 알지 못하고 죽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무작정 유학 준비를 시작하다 우연히 서울대 곤충계통 분류실을 알게 됐다. 당시 지도교수인 이승환 교수와의 면담이 계기가 돼 곤충학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연구를 시작하고 5년쯤 되었을 때 곤충분류학과 인문학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을 구분할 때 인간의 과학적인 사고에서 비롯한 철학이 개입하게 된다. 인문학과 과학이 생물분류학에서 만나는 것이다.”

 -곤충학과 농학의 관계는.

 “곤충학이 농학에서 연구가 시작된 이유는 해충 때문이다. 인간은 작물을 대량생산해 정착생활이 가능해졌다. 작물생산에 있어서 가장 큰 경쟁자는 곤충이다. 곤충 입장에선 기존에 먹던 식물이 인간 덕에 갑자기 풍성해지고, 그러니 자연히 그 수가 늘어서 인간과 작물(먹이)을 두고 싸우게 됐다. 곤충은 식물을 가해하는 와중에 식물에 병을 옮기는 매개자 역할도 한다. 이에 농학에서 곤충 즉 해충을 연구하게 됐다.”

정성훈 충남대 교수가 해충 표본을 보여주며 곤충학과 농학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배은나 객원기자

 -연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연구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농업에서 중요한 해충그룹인 식식성 노린재류와 천적유용자원인 포식성 노린재류의 국내 생물다양성 연구다. 국가생물자원으로서 가치가 높은 포식성 노린재류에서 전세계적으로 발견되지 않은 신종 10여종,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국내 미기록종 30여종을 발굴했다. 둘째 세계 최초로 DNA 염기서열을 이용해 노린재아목(Heteroptera)에 대한 종동정법을 개발, 데이터를 구축했다. 이는 농업인·농업관련회사·국가연구소·검역원 등 여러 방면에서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는 향후 해충 종동정 간이진단키트 등을 개발할 때 농업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마지막은 노린재류의 계통분석을 통한 유연관계를 밝히고 이를 통해 생물학적 특성을 밝히는 진화적 추론에 관한 연구다. 세계 최초로 시도됐다. 생물농약으로 사용하고자 천적자원을 선발할 때 많은 후보 중에서 1~2종을 고르기는 어렵다. 농업연구자들은 종선발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연구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과학적 기반 아래 예측모델링은 응용적 연구에서 실패확률을 낮출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앞으로 농학에서 충분히 시도될 만한 가치 있는 연구 분야다. 최근 5년 간 SCI급 논문 30여 편을 출판했고, 이 기초연구와 데이터가 향후 미래형·지속발전가능한 농업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정받아 수상하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연구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사례를 들어달라.

 “국내서 재배되는 파프리카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되는데 일본검역당국에서 국내과실에서 발견된 작은 벌레를 트집 잡아 수출을 금지한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파프리카를 실은 배는 일본에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 항구에서 정박해야 한다. 하루에만 수백만원의 유지비용이 들어가고 파프리카는 망가지게 된다. 검역시에 그 벌레가 정확히 무슨 종인지 밝히고 이 종이 수출상대국에도 발생하고 해충이 아니란 보고서가 최대한 빨리 마련돼야 수출이 허용된다. 한번은 우리나라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이러한 내용을 긴급히 보고 받았는데 난 그 벌레에 대해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었고 일본 쪽 기록 자료도 있어서 문제가 빨리 해결됐다. 만약 이러한 데이터가 없었다면 장기간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곤충분류학자를 많이, 그리고 제대로 양성하는것이 첫 번째 목표다. 그리고 농업관련 노린재류(해충·천적자원)에 대한 국내생물데이터를 구축하고 싶다. 이는 농업선진국에선 200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 기반을 제대로 닦아 놓고 잘 유지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우리 실험실이 세계적으로 연구를 선도하는 연구그룹이 되었으면 한다.”

  배은나 객원기자

◆정성훈 교수는 =한양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에서 곤충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한국연구재단 국비연수 박사후연구원을 역임하고, 2013년 9월 충남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응용생물학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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