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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만난 린뱌오 “난 내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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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29면

국공 내전 시절 동북에서 참모들과 작전을 숙의하는 동북민주연군 사령관 린뱌오(맨 앞줄 오른편의 검은 상하의). [사진 김명호]

명분과 핑계, 따지고 보면 그게 그거지만, 그래도 명분은 중요하다. 2차 국공합작도 명분 하나만은 손색이 없었다. 항일전쟁, 그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410>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은 보통 정당이 아니었다. 정치 건달들의 집합체가 아닌, 무장한 혁명정당이었다.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합작은 했지만 전쟁이 끝나면 충돌은 시간문제였다. 이럴 경우 평화를 주장하며 전쟁을 준비하는 측이 승리하기 마련이다.

1941년 1월 중공이 주축인 항일 게릴라 부대(新四軍)를 국민당 측이 공격했다. 그럭저럭 유지되던 국공 관계가 최악에 이르렀다. 옌안의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국민당과의 합작을 공고히 할 기회라고 판단했다. 장제스(蔣介石·장개석)를 비난하기는커녕 만나고 싶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전 세계의 반파시스트 세력은 단결해야 한다. 국공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

국내외 환경도 중공 측에 유리했다. 국민당 내의 진보적 인사들이 장제스의 반공 정책을 비난했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도 국민당의 반공을 지지하지 않았다. 친중파 오언 라티모어를 충칭에 보내 의중을 전달했다. “내전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지원하는 무기를 반공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영국 총리 처칠도 가만있지 않았다. 1942년 7월 7일 항일전쟁 5주년 축하전문을 장제스에게 보냈다. “지난 5년간 통일전선이 원만히 이뤄진 것을 축하한다.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장제스는 코쟁이들이 협박한다며 노발대발했지만 반공 정책을 거둬들였다. 마오쩌둥과 만나겠다고 미국 측에 통보했다.

린뱌오와 예췬. 앞줄 왼쪽이 딸 더우더우(豆豆), 오른쪽이 아들 린리궈(林立果).

장제스는 황푸군관학교 교장 시절부터 마오쩌둥을 싫어했다. 마오가 황푸에 강연 올 때마다 “목욕도 안 하고 머리도 제대로 안 감는다. 옆에만 가면 냄새가 진동해서 머리가 아프다. 칫솔질도 안 하는 주제에 입에서 고전이 술술 나온다”며 무시했지만 현실을 존중했다.

8월 14일 중공 측 대표로 충칭에 파견 나와 있던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에게 통보했다. “서북(西北)을 순시할 계획이다. 시안(西安)에서 마오쩌둥과 만나고 싶다.” 시안과 옌안은 지척 간이었다.

저우언라이는 당일로 마오쩌둥에게 전문을 보냈다. “장제스가 시안에서 주석을 만나고 싶어한다. 악의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목적은 예측하기 힘들다. 장제스는 린뱌오(林彪·임표)를 좋아한다. 감기가 심해 린뱌오를 대신 보내겠다는 답전을 보내라. 린뱌오가 장제스의 의중을 살핀 후 만나는 것이 안전하다.”

마오쩌둥도 저우언라이의 의견에 동의했다. 장제스에게 전문을 보냈다. “열흘간 감기로 신음하는 중입니다. 린뱌오를 먼저 보내겠습니다. 저는 완쾌하는 대로 시안으로 가겠습니다.” 린뱌오가 온다는 말에 장제스는 토를 달지 않았다.

9월 초순 국민당은 옌안에 전문을 발송했다. “린뱌오의 시안 방문을 환영한다. 위원장이 옌안의 국민당 연락사무소 소장에게 린뱌오를 시안까지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9월 14일 린뱌오는 옌안을 떠났다. 폭우가 쏟아지고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시안까지 3일이 걸렸다. 기다리던 장제스는 충칭으로 돌아갔다. 린뱌오에게는 편지 한 통을 남겼다. “충칭에서 만나자. 9월에는 네가 와도 만날 시간이 없다. 시안에 있다가 내가 연락하면 충칭으로 와라.”

시안에 머무르는 동안 린뱌오는 황푸군관학교 선배들과 훗날 국민당 총통대리를 역임하는 리쭝런(李宗仁·이종인)의 환대를 받았다. 한 차례 동석했던 여류 화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평소 내로라하던 사람들이 30대 중반의 왜소한 사람 눈치 보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무슨 남자가 술은 물론이고 춤도 출 줄 몰랐다. 산해진미가 즐비했지만 물만 마셨다. 술을 못하면 노래라도 하라고 했더니 아는 노래가 한 곡도 없다며 얼굴이 빨개졌다.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복장이 어찌나 초라했던지 옷을 한 벌 사주고 싶었다. 린뱌오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충칭에 도착한 린뱌오는 좋은 옷을 한 벌 사 입었다. 8월 13일 저우언라이의 안내로 장제스를 만나러 갔다. 린뱌오는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다. “교장께 보고합니다. 학생 린뱌오가 왔습니다.” 장제스의 시종부관이 기록을 남겼다. “위원장은 린뱌오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너는 내 학생이다. 충칭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그렇게 흐뭇해할 수가 없었다.”

린뱌오는 당당했다. “우리 당은 명칭만 공산당일 뿐 구국과 구민을 위한 정당입니다. 교장과 저는 같은 이상을 추구합니다. 진정한 합작을 희망합니다. 교장은 틈만 나면 내전을 도모합니다. 중국의 현실은 내전을 바라지 않습니다.”

저우언라이가 장제스의 안색을 살폈다. 웃고는 있지만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린뱌오는 눈치를 줘도 모른 체했다. 할 말을 계속했다. “저는 내전에 반대하지만 내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산이 많고 도처에 삼림이 무성합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자급자족으로 지구전을 펼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군사력으로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서로 믿으며 협상과 담판을 진행해야 합니다.”

장제스는 완고했다. “나도 한때는 사회주의를 신봉했다. 공산당은 중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 장제스가 자꾸 시계를 쳐다보자 저우언라이가 오늘은 그만하자며 린뱌오를 재촉했다.

집무실을 나서는 린뱌오에게 장제스가 말했다. “충칭에 머무는 동안 아무 때건 나를 찾아와라. 떠난 후에도 내 생각이 나면 나를 찾아라. 나도 네 생각을 자주 하마.”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옌안으로 돌아온 린뱌오는 전쟁과 담을 쌓았다. 대신 연애에 열중했다. 국민당 소장의 딸 예췬(葉群·엽군)이 마음에 들었다. 아나운서 출신답게 목소리가 예뻤다. 결혼을 서둘렀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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