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트북을 열며

의원들, 쪽박이나 깨지 마라

중앙일보

입력 2005.10.13 19:52

업데이트 2005.10.1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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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드디어 올 게 왔다."

삼성전자가 프로농구 타이틀 스폰서를 철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스포츠계 인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국정감사에서 연일 '삼성 때리기'를 하고, '삼성이 스포츠도 독식한다'는 비난까지 이어지자 프로스포츠 관계자들은 "이러다가 삼성이 스폰서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국회의원들이 삼성의 스포츠 독식을 지적한 것은 둘 중에 하나다.

무식하거나, '삼성 때리기' 코드에 맞춘 것이거나.

차분하게 따져 보자. 삼성전자는 프로야구(삼성 PAVV), 프로축구(삼성 하우젠), 프로농구(애니콜) 타이틀 스폰서였다. 겉으로 보면 분명 '독식'이 맞다. 그러나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등 떠밀려서 한 거다. 프로야구 1년 스폰서료가 45억원, 프로축구가 34억원, 프로농구가 34억5000만원이다. 삼성전자는 올 한 해에만 114억5000만원을 프로스포츠 스폰서 비용으로 썼다. 솔직히 현재 한국 기업 중에서 1년에 30억~40억원을 타이틀 스폰서료로 낼 만한 기업이 거의 없다. 장기 불황으로 중소기업들은 1년에 3억원 정도를 아끼기 위해 줄줄이 실업 스포츠 팀을 해체해(본지 10월 3일자 6면) 아마추어 스포츠는 고사 상태에 빠졌다. 프로팀을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팀은 겨우 유지하지만 브랜드 홍보나 간접광고가 주목적인 타이틀 스폰서를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야구위원회(KBO)나 프로축구연맹, 한국농구연맹(KBL)은 '그래도 한국에서 잘나가는' 대기업들을 상대로 스폰서 요청을 하지만 외면당하기 일쑤다.

왜 그럴까. 삼성전자의 국내 매출 규모는 전체의 15%가 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의 국내 비율도 25% 정도다. LG전자도 비슷하다. 포스코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광고를 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국내보다는 해외 마케팅에 더 힘을 쏟는다. 주요 타깃은 유럽. 미국.인도.중국이다. 스폰서를 하더라도 이들 나라에서 한다. 그게 훨씬 광고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프로를 운영하는 기관들은 죽으나 사나 '가장 덩치가 큰' 삼성전자에 매달린다. 거의 읍소(泣訴) 수준이다. 그래서 겨우 동냥하다시피 해서 따온 타이틀 스폰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동냥 바구니를 한 방에 차서 날려버렸다. '동냥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 쪽박을 깼다.

삼성전자가 낸 돈만큼 홍보 효과를 봤다고 생각하지 마라. 프로축구연맹 관계자의 말대로 '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해 준 거다. 그게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완전히 '나무에 올려 놓고 밑에서 흔드는 격'이다.

방송과 신문에서 '삼성 파브 프로야구''삼성 하우젠 프로축구''애니콜 프로농구'라고 표현하는 것을 놓고 국회의원들이 '간접광고'라고 몰아세우면 어느 누구도 스폰서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프로농구 타이틀 스폰서는 농구팀을 운영하고 있는 '회원사' KCC가 맡았다. 1년에 30억원을 내는 조건으로. 이거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다.

스포츠는 즐거움이다. 감동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다. 2002 월드컵에서 경험했듯이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의 국민소득 수준과 인구에 비해 프로스포츠가 너무 많다는 지적은 맞다. 그러나 없애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어렵다.

한국처럼 '밤 문화'가 발달해 있는 곳에서는 스포츠가 더욱 활성화돼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 '하는' 스포츠든, '보는' 스포츠든.

정치인들에게 도와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제발 쪽박만 깨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번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국회의원이 '한국 체육계의 개혁'을 부르짖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더 씁쓸하게 한다. 아마추어 스포츠와 프로 스포츠를 모두 죽여 놓고 무슨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가.

손장환 스포츠팀장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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