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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In&Out 레저] 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가을 달렸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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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에서 운문사 가는 길. 부야리 사는 한 소년이 ‘감을 따 주겠다’며 장대를 들었다.

감즙 물 들인 광목. 감 염색은 바람에 떨어진 낙과를 재료로 쓴다고.

운문사 경내. 부디 성불하시길.

청도
주렁주렁 감이 열렸다. 마을 어귀, 산비탈의 밭 언저리, 길가 초등학교 울타리, 절집 뒷마당에 가을이 그득 매달려 있다. 감나무 중 성급한 놈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홍시를 떨어뜨릴 듯하다. 지금 경북 청도군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분지형인 청도는 땅의 80%가 산지다. 그러니 옛적부터 논 농사며 밭 농사 수확이라고는 보잘 것 없었다. 대신 감나무가 잘 자랐다.

'사흘 안 끓여도/ 솥이 하마 슬었나/ 보리 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 보네.'

청도 출신 이영도(1916~1976) 시인의 시조에서도 보듯 감나무는 이곳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친구나 다름없었다.

사실 청도 감에 대해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청도군에 따르면 경북에서 나는 감의 55%가, 전국 감 생산량의 18%가 청도 땅에서 자란다. 재배 면적으로 보면 1611ha요, 감 재배 농가가 5000호가 넘는다 한다.

청도 감은 그 모양이 둥글납작해 '접시 반(盤)' 자를 써 '청도 반시(盤枾)'라 하는데, 신기한 것은 백에 아흔아홉은 씨가 없다는 점이다. 청도 감나무를 타지로 옮겨 심으면 씨가 생기고, 씨가 있는 감나무를 청도 땅에 옮겨오면 씨가 안 생긴다는 이곳 사람들의 설명도 희한할 뿐이다.

청도 반시에는 왜 씨가 없을까. 대개 과일은 수정이 되고 씨가 맺혀야 열리지만, 감나무는 수정이 안 되고 씨가 없어도 열매가 잘 맺힌다. 감은 보통 과일과 달리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데, 청도 감나무는 수꽃이 없는 품종이다. 물론 이곳에는 청도 반시 이외의 품종도 일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곳은 분지다 보니 안개가 자주 껴 감꽃 피는 5월 중순의 오전에 벌들이 꽃가루를 잘 전달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수정이 잘 안 되고, 씨가 맺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인구 3만 명인 청도군에 1967년에는 13만 명까지 살았다. 농어촌이 보통 그렇듯 청도에서도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이농(離農)으로 폐가가 생겨났고 집이 허물어진 뒤에는 감나무만 남았다. 그래서 감나무가 더욱 많아진 게다.

감에 씨가 없다는 것은 홍시로서는 장점이나, 곶감을 만드는 데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씨가 없는 탓에 그 모양이 유지되지 않고, 일그러지기 때문이다. '청도 반시'는 알려졌어도 '청도 곶감'이라는 이름이 없는 것은 이런 연유다.

그래서 청도군에서는 약점을 극복해 아이스홍시.감말랭이 등 감을 가공한 먹거리를 만들고, 감으로 와인도 빚고 있다. 감즙으로 물을 들인 옷이나 침구류도 판매한다. 그 덕에 청도군은 감으로 지난해 200억원 가까이 벌어들였다.

감나무 가로숫길을 따라 찾아간 운문사. 비구니 사찰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250명의 학인(學人)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 승가대학에서 4년간 공부한 뒤 승가고시를 합격해야 비구니계를 받고 정식 비구니가 된다. 이들의 자유 시간은 하루 2시간. 경내에 감나무가 지천인데 손이 모자란 탓에 감을 수확하지 않는다.

"요새는 간식거리가 다양하다 보니 젊은 학인들이 감을 잘 따지 않아요. 70년대에 제가 학인으로 여기 있을 때는 겨울철에 유일한 간식이 감이었지요. 짚풀 사이에 감을 재워 놓았다가 겨울에 홍시로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혔어요."

학감(學監) 스님은 감 이야기를 들려주다 추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감나무에 비치던 가을 햇살이 젖어들 즈음 범종루의 법고가 울리기 시작했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시간. 학인들은 법고 소리에 마음을 가다듬고, 대종 소리를 들으며 대웅보전으로 모여들 것이다.

'내 머리 이미 희고 / 가을이 또한 깊다 / 산야(山野)에 열매 다 염글어 / 젖줄들을 놓았도다 / 이제 내 허허 웃는 일밖에 무슨 일이 있으랴.'

이영도 시인의 오빠이며, 역시 청도 출신인 이호우(1912~70) 시인의 '가을'이 운문사 경내에서 깊어가고 있다.

박철수 감독이 말하는 내 고향 청도
꿈에도 그리운 건천 가는 길

5~7일 청도군청 앞마당에서는 '박철수 영화제'라는 이름의 이색 행사가 열렸다. 청도군이 주최한 이 영화제에 참석한 청도군민 1800여 명을 위해 '학생부군신위' '오세암' 등 박철수(58) 감독의 영화 10여 편을 무료 상영했다. 그는 청도읍에서 태어나 대구상고에 진학할 때까지 줄곧 청도에서 자랐다.

"저 어릴 적 청도에 극장이 잠깐 있다가 사라진 뒤 현재까지 청도에 극장이 없어요. 고향을 떠나 사회인이 된 뒤 이번 영화제로 비로소 고향과 소통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청도에서 복숭아와 사과도 많이 재배하지만 박 감독이 어릴 때 청도는 순전히 감나무뿐이었다. 감꽃 필 무렵 그는 지푸라기에 감꽃을 꿰어 먹으며 놀았고 초복을 지나고선 땅에 떨어진 감을 주우러 동네 아이들과 쏘다니기도 했다.

그가 추천하는 청도 명소. 운문댐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천 나들목으로 이어지는 20번 국도다.

"운문댐은 전국에서 가장 위용이 아름다운 댐이에요. 건천 가는 길은 운무가 근사합니다. 한가하면서도 대단히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죠."

<청도>글=성시윤 기자<copipi@joongang.co.kr>
사진=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여행정보

■수도권에서 차 몰고 청도 가는 길=중부내륙고속도로→김천 분기점에서 대구 방향 경부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 북대구 나들목→청도 방향 25번 국도

■운문사 가는 대중교통편=대구남부정류장(053-743-4464)에서 운문사행 버스 운행. 오전 7시40분~오후 8시, 하루 13회 운행. 1시간30분 소요. 운문사에선 새벽 예불이 오전 3시, 저녁 예불은 오후 5시45분에 시작한다. 운문사(www.unmoonsa.or.kr) 054-372-8800.

■숙소=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용암온천 일대에 숙소가 많다. 용암온천관광호텔(054-371-5500.www.yongamspa.co.kr)이 그중 깔끔하다. 숙박료는 주중 6만8000원, 주말 7만8000. 사우나(용암웰빙스파)만 이용하면 6500원.

■맛집=청도에는 곳곳에 추어탕집이 많다. 특히 청도역 앞에 10여 집이 몰려 있다. 운문댐과 청도 동창천에서 잡은 미꾸라지와 잡어를 푹 고아 국물을 낸다. 얼큰하면서도 맑고 개운하다. 용암온천에서는 용암온천관광호텔 앞 '점백이 손칼국수'집 (054-371-0133)을 추천한다. 들깨 가루를 듬뿍 넣은 고디탕('고디'는 다슬기를 일컫는 말)이 일품.

■청도 반시=주요 도로변에서 이곳 여인들이 홍시를 판다. 감말랭이(단감의 과육을 조각으로 잘라 반건조한 것)는 청도군 내 농협 지점 또는 풍각면 송서리의 두산농원(054-372-2428)에서 살 수 있다. 가격은 1㎏에 1만5000원 정도. 감 와인 구입 문의는 풍각면 봉기리 청도와인(054-371-1100.www.gamwine.com). 한 병에 2만2000원. 청도군 이서면 고철리의 '예던길 따라'(054-372-8314.blog.naver.com/dream779.do)라는 공방에서 감 염색과정과 감 염색 제품을 구경할 수 있다.

■청도 관광 문의=청도군청 문화관광과 054-370-6371.

*** 바로잡습니다

▶10월 14일자 week& w7면 '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가을 달렸네'라는 제목의 기사 중 불교 용어가 잘못 사용됐기에 바로잡습니다. '승가대학에서 4년간 공부한 뒤 승가고시를 합격해야 사미계를 받고 정식 비구니가 된다'라는 문장에서 '사미계'는 '비구니계'의 잘못입니다. 승가대학에 들어가려면 남자는 사전에 '사미계'를, 여자는 '사미니계'를 받아야 합니다. 대구에 사는 독자 박재현님이 지적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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