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규제] 하. 선진국, 이렇게 준비했다

중앙일보

입력 2005.03.17 18:46

업데이트 2006.05.1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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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교토의정서에 대한 선진국의 대응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은 온실가스를 줄인 기업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는 등 적극적인 유도책을 폈다. 그 결과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탈퇴했다. 반면 일본은 정부가 협상을 잘못해 불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들 국가의 움직임과 그 배경을 면밀히 파악한 뒤 우리 실정에 맞는 협상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탈퇴한 미국=미국은 2001년 탈퇴했다. 교토의정서를 따랐다가는 경제에 치명타를 입는다는 판단에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교토의정서대로라면 미국은 2008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의 93%로 맞춰야 한다. 이만큼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한 해 4천억 달러를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미국 에너지부는 추산하고 있다. 이는 2004년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이르는 금액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현진 박사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것 자체를 막지 말고, 내뿜은 뒤에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처리하자는 게 미국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발전소나 공장 등에서 나오는 CO2를 잡아내 땅속에 묻는 기술 등을 개발해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택하면 '대기 중 온실가스 처리'라는 신산업을 창출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미국은 국제 여론을 이런 쪽으로 끌어가기 위해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온실가스 처리 기술을 개발하자는 '탄소격리 리더십 포럼'을 2003년 만들었다. 여기에는 일본.중국 등 16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한국은 끼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수소연료 등 미래 청정에너지를 개발하는 '수소경제 국제 파트너십'도 주도하고 있다. 화석 연료가 고갈될 때에 대비하면서,친환경 연구에 힘을 쏟는다는 이미지를 심어 교토의정서 재가입 압력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에너지관리공단 노종환 경영기획실장은 "실제 요즘 교토의정서 관련 국제 회의에 가보면 EU보다 미국.일본 등이 환경 문제에 더 많이 노력한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타산지석'일본=일본은 산업계가 먼저 움직였다. 교토의정서를 맺기 전 게이단렌(經團聯)이 주도해 업종별로 얼마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2008년 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했다. 그러나 환경.외교 관련 정부부처가 이를 반대했다. '친환경 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으려고 일부러 협상 장소를 교토로 유치했는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일본은 2008년 배출량을 1990년보다 2.5% 줄이겠다고 제시했고 협상 결과 6% 줄이는 것으로 결정됐다. EU 국가 평균 감축 목표(8%)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일본에선 정부가 산업계 현실을 무시하고 국제여론만 의식해 협상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 일본 기업들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투자하는 대신 청정개발체제(CDM)를 통한 배출권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CDM이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진 선진국이 그렇지 않은 개도국 회사의 공장 설비 등을 개선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주고 감축량만큼을 배출 권한으로 갖는 것이다. 도쿄전력은 칠레의 전력 회사와, 도요타 통상은 브라질 철강 업체와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에도 손을 뻗쳐 화학회사 이네오스케미칼이 울산화학의 설비를 개선해 주기로 최근 계약했다.

◆'감축 주도'영국=영국은 교토의정서를 맺자고 논의하던 단계인 90년대 중반부터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하는 등 준비를 시작했다. 기업별 온실가스 배출 저감 목표도 정했다. 2002년엔 약 4500억원의 기금을 만들어 목표보다 더 많이 줄인 기업들에는 초과 절감분 t 당 3만5000원 정도의 상금을 줬다. 2001년부터는 산업체가 쓰는 연료에 '기후변화세'를 붙이는 한편, 거둔 세금은 온실가스를 내지 않는 청정에너지 연구개발 사업에 투자했다. 또한 온실가스 절감 목표를 달성한 기업들에는 기후변화세를 80% 깎아줘 기업들 스스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힘을 쏟도록 유도했다.

이 같은 노력들이 결실을 거둬 영국은 교토의정서가 지운 의무보다 더 많이 온실가스를 줄이게 됐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영국은 2010년께 배출량을 90년의 90%에 맞춰야 하나 영국 내부적으로는 이를 80%선까지 끌어내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리 되면 영국은 추가 절감 10%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권을 외국에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권혁주.박혜민 기자

*** 우리 대응 방안은

'명분에 휩쓸리지 마라'-.

전문가들은 교토의정서가 환경 협약이라기보다는 경제 협약임을 명심하고 정부가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동구권의 오래된 설비만 교체해도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EU가 환경을 명분 삼아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돈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미국.일본 등을 끌어들인 게 교토의정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일본은 생산비용이 올라가 EU가 상대적인 이익을 얻게 된다는 설명이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온실가스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지도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그런데도 EU가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교토의정서를 적극 추진한 것은 명백히 경제적 이익을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일본처럼 명분에 휘말리지 말고 철저히 경제 실리를 챙기는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산업계 스스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드는 돈 등을 조사해 산업자원부와 공동으로 협상안을 만들고, 환경부와 외교통상부 등이 이를 바탕으로 실무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만든 국제기구 탄소격리 리더십 포럼에 우리도 빨리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포럼의 목적은 배출된 온실가스를 처리하는 기술을 국제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것. 사실상 '온실가스 뿜는 것 자체를 줄이자'는 교토의정서에 반대하는 목적으로 미국이 설립했다. 때문에 이런 포럼에 참여해 교토의정서 미가입국인 미국.중국과 보조를 맞추면 온실가스 협상에서 EU에 밀리지 않을 수 있다.

협상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영국처럼 각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포스코 관계자는 "2008년까지 8900억원을 들여 온실가스를 6~7% 줄이는 계획을 세웠다"면서 "이렇게 미리 줄인 양을 나중에 배출할 권한으로 인정해 주는 등의 방식으로 기업의 감축 노력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러문제연구원 권영갑 소장은 "북한이나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주고 배출권을 인정받는 것도 검토,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온실가스 규제에 대비하는 동시에 남북 화해 분위기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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