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순흥 안씨

중앙일보

입력 1983.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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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도산 안창호, 그리고 ,안중근-.
민족사의 가강 참담한 어둠속에 몸을 살라 어둠을 밝히고 구원의 별이 되어 역사의 천공에 오른 거룩한 두 이름.
이들은 순흥안씨의 영광일뿐 아니라 한족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 「참아들」들이다.
어질고(인), 슬기롭고(지), 굳센(용) 한겨레의 일이 고난의 마지막 수렁에서 「세계선민」의 사명을 향해 떨쳐 일어나며 도산은 『참되자(무실) 일하자(역행) 미쁘자(충의) 날쌔자(용감)』의 4대정신을 지표로 큰선비운동(흥사단)을 일으켰고 안중근은 하르빈역두에서 동양평화의 교란자 이두박문을 평화를 사랑하는 5억 아시아인외 이름으로 처단했다.

<빛나는 도산정신>
『거짓이여! 너는 내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군부의 원수는 불공재천이라 했으니 내 죽어도 거짓말은 아니하리라.』
『서로 사랑하면 살고 서로 싸우면 죽는다. 너도 사람을 공부하고 나도 사랑을 공부하자. 남자도 여자도 우리 2천만이 다 사랑하기를 공부하자. 그래서 2천만 한족은 서로 사랑하는 민족이 되자.』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똘배나무에는 똘배가 열린다. 독립국의 자격이 있는 국민에게는 독립국의 열매가 열린다.』
『동포여! 힘을 기르소서.』
『나라가 없을때 한집과 한몸이 있을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수는 없다.』
59년 일생을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고, 일제에 나라가 먹히도록 하고만 자신과 겨레의 악덕과 싸우다 끝내 침략자의 형벌에 순국한 도산 안창호는 흔히 인도독립운동의 성웅 「간디」에 비교된다.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장부수사필여철 의사임위기사운)』1909년 하르빈에서 이두박문을 처단한 안중근은 이같은 유시를 남기고 의연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남아의 최후였다.
순흥안씨의 시조는 고려때 보승별장을 지냈던 안자미. 당시 흥령지방(현경북순흥의 별칭)에 세거했기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순흥」으로 삼았다. 그는 영유·영린·영화등 세아들을 두었는데 이들 3형제가 분파되어 순흥안씨의 3대산맥을 이루고있다.
우리나라 주자학의 태두 안향은 고려조의 대표적 인물. 원종1년 18세때 문과에 올라 도첨의중찬을 지냈던 그는 문교의 진흥을위해 육영재단인 「섬학전」을 설치하고 후진을 양성하는등 이땅에 유학의 학풍을 수립했다. 그는 사후에 문묘배향의 영예를 누렸다. 그의 문하에서 명유 백이정·우탁등이 나왔고 특히 백이정의 학풍은 이제현·이색등에 계승되었으며 다시 이색의 문하에서 권근이 나와 유학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진다. 충숙왕때 상호군을 역임했던 안우기는 안향의 아들이다.

<주자학낳은 안향>
안축(충목왕조·찬성사) 안보(정당문학) 안집(대제학)등 3형제는 여말의 명신들. 안축은 국문학사에 빛나는 「관동별곡」「죽계별곡」등의 명편을 남킨 대문장이다. 이밖에 여말과 조선초의 인물로 안목(공민왕조·대제학) 안원숭(충혜왕조·예문관대제학) 안종원(태조조·반문하부사) 안경공(태종조·집현전대제학) 안원(태종조·도절제사)등이있다. 이중 안경공은 조선개국공신으로 가문의 번성을 이루었다. 그의 아들 안순(세종조·호공리)과 손자 안숭번(세종조·예문관대제학) 안숭효(세조조·대사헌)등이 모두 벼슬길에 올랐다. 예문관대제학 안숭번은 『고려사』편찬에도 참여했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던 석학이었다.
순흥안씨는 조선 중종∼명종대에 전성기를 누린다.
이시기에 안침(중종조·공판) 안리(중종조·좌의정) 안위(명종조·호판) 안현(명종조·좌의정) 안자유(명종조·공판)등 명현을 냈다.

<관동별곡의 안축>
이들중 좌의정 안당은 중종14년 기묘사화때 영의정 정광필과 함께 조광조등 사림파의 유신들을 구하려다 도리어 남곤·심정등 일파의 모함으로 파직되었다.
그후 그의 아들 안처겸이 기묘사화의 장본인 남곤·심정등을 제거하려다 서고모의 아들인 송사련의 무고로 동생 처근과 함께 사사되었다.
이 사화로 안위의 일문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안위는 명종10년에 『경국인전』을 찬수한 석학. 그는 군략가로 유명했으며 의학에도 정통했다. 사후 청백리에 올랐다. 그의 아우 판결사 안상은 음악의 대가였다. 그는 선조5년 거문고·비파·강구의 악보를 망라하여 『고금자보』를 발간했는데 이 악보를 『금보』라한다.
이밖의 특기할만한 인뭄로 안명세가 있다. 그는 명종3년 정순붕등이 을사사화 일으켜 많은 현신들을 순청할때 사관으로서 그 실상을 빠짐없이 사화에 올렸다가 그들의 무고로 사형을 당하고 가산까지 몰수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1910년 조선총독 「데라우찌」(사내정의)를 암살하려다 체포되어 10년의 옥고를 치러야했던 안중근의 동생 안명근, 안중근의 공판때 무료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안병찬(상해임정 병무차장), 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 3·1운동후 독립군사령부를 창설, 항일전에 앞장섰던 안무,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로 해방후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지낸 안재홍,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천재음악가로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한말의 대표적인 화가 안중식·서상일·신성모등과 항일비밀결사 대동청년단을 조직, 구국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독립군 운동을 측면지원했던 거상 안희제, 을사조약체결후 1천여 의병을 진두지휘 홍주산성에서 항일전을 치렀던 의병장 안병경등이 조국독립의 제단에 일생을 바쳤다.
순흥안씨는 해방후 사회각계에 많은 인재를 냈다.
안경모(前교통부장관·건설기술연구윈강) 안동혁(전상공부장관·과학회관이사장) 안동준(전국회의원·국회의원동우회부회장) 안광호(주불대사) 안무혁(국세청장) 안응모(전치안본부장)등이 정계·관계에서 활약해온 얼굴들. 현역국회의원으로는 안갑준·안구덕등이 있다.
안우만(서울지법수석부장판사) 안경상(대구지검검사장) 안종혁(서울민사지법부장 판사) 안범수(전서울고검검사·변호사) 안성회(서울지법판사) 안일낙(법박·변호사)등은 법조계의 인물들이다.
학계에는 안세희(연세대총장) 안병욱(숭전대교수) 안상원(건국대교육대학원장)등이 돋보인다.
안동선(신한주철회장) 안동렬(금성통신회장) 안병휘(삼성중공업 사장), 안수철(한국화학사장) 등이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글 김창욱 사진 양원방기자>
▲다음주는 「신창 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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