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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작전' 석해균 선장, 자신 쏜 해적 찾아가 포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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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석해균 전 삼호주얼리호 선장(오른쪽)이 14일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무함마드 아라이를 면회한 뒤 손을 꼭 잡으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 JTBC]

21일은 2011년 1월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1만t) 선장과 선원 등 21명을 극적으로 구조한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4주년을 맞는 날이다. 그 4주년을 일주일 앞두고 대전교도소에선 의미 있는 만남이 있었다.

 지난 14일 오후 2시. 대전교도소 가족접견실에 삼호주얼리호의 선장이었던 석해균(62) 해군 교육사령부 안보교육담당관(부이사관)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기지를 발휘해 선원들을 구해 ‘석 선장’을 고유명사처럼 만든 인물이다.

 잠시 뒤 하늘색 죄수복을 입은 훤칠한 키의 흑인 남자가 들어섰다. 구출 작전 당시 석씨에게 총을 쏜 혐의로 2011년 말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복역 중인 무함마드 아라이(27)였다. 그의 왼쪽 가슴엔 죄수번호(3-6428)가 새겨져 있었다. 구출 작전 당시 해적 13명을 소탕하고 5명을 생포했지만, 석씨는 해적이 쏜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13일 만에 극적으로 살아났다. 4년 만의 재회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포옹했다. 소말리아어를 하는 박흥열 교도관의 통역으로 둘은 대화를 나눴다.

 ▶석씨=“건강은 어떤가.”

 ▶아라이=“(교도소에서) 일도 하고 생활이 나아졌다. 너무 가난해 해적질이 나쁜 건지도 모르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나섰다가 붙잡혔다. 선장님께 정말 죄송하다.”

 ▶석씨=“여기서 돌아가면 생업에 보탬이 되도록 기술을 확실히 배우라.”

 ▶아라이=“감사하다. 소말리아에 있는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걱정이 많은데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석씨=“성실히 생활하면 감형을 받을 수도 있다.”

 ▶아라이=“ 죽은 해적 두목과 몇 명이 잔인하게 한 데 대해 정말 죄송하다.”

 석씨가 진압작전 당시를 회고하자 아라이는 “한국 해군의 진압작전이 너무 무서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말했다. 석씨는 “함께 수감 중인 동료도 빨리 가족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약 1시간 동안의 면회가 끝날 무렵 두 사람은 다시 손을 잡고 포옹한 뒤 작별했다. 석씨는 20일 본지와 별도로 한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엔 내가 해적 아라이의 포로였지만 지금은 아라이가 나의 포로가 된 셈”이라며 “내가 그의 총을 맞아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으니 한 번은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해 그를 만났다”고 말했다. 아라이를 위해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낸 그는 “지난 일은 잘못한 것이지만 20대 젊은이니까 필요한 기술을 배워 언젠가 소말리아로 갔을 때를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석 선장과 아라이의 만남은 25일 오후 8시30분 JTBC ‘특집 다큐 비화-아덴만 여명 작전 7일간의 기록’(연출 강민석·이명섭)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이명섭 PD는 “청해부대 특수전 요원들이 헬멧에 장착한 카이샷(무선 영상 송수신 장비)을 통해 촬영한 작전 당시의 영상도 최초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세정·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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