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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 팔며 문전박대 많이 받았죠 일이 재미있어 끝까지 버텼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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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80년대 자신이 수작업으로 만든 스노보드(왼쪽)와 최신 제품을 잡고 있는 버튼 회장. [사진 버튼]

“저도 외판원 처럼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트럭에 보드를 싣고 다녔고,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어요. 하지만 원하는 일을 하는 재미와 끈기, 그리고 저항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었죠.”

 지난 10일 방한한 글로벌 스노보드 업체 버튼의 제이크 버튼 카펜터(61) 회장은 성공의 비결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이 곧 나 자신이고, 회사, 스포츠라는 생각으로 일해왔다”며 성공의 비결을 말했다. 기자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해봤어?” 일화를 말해주자 “공감한다”고 말했다. 버튼 회장은 80년대 이후 스노보드를 전세계에 대중화시켜 ‘스노보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전세계 스노보드 시장의 35~40%를 차지하고 있으며, 헤르만 지몬의 ‘히든 챔피언’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이하는 버튼 회장과의 일문일답.

 - 지금은 글로벌 기업이겠지만, 창업 당시에는 어땠는지가 궁금하다.

 “직원 4명이 수공업으로 시작했다. 밤에는 손으로 스노보드를 깎았고, 낮에는 트럭에 보드를 싣고 팔러다녔다. 사실 창업 초기에는 이렇게 회사가 커질지 몰랐다.”

 - 니치마켓격인 스노보드 시장에서 창업해 겨울스포츠의 ‘대세’로 키워낸 비결은.

 “70년대 스노보드는 수상스키처럼 탔다. 보드 앞에 달린 줄을 잡고, 한 발만 보드에 끼워 타는 형태였다. 나는 이 줄을 없애고 양발을 고정시켜 타는 스노보드를 만들었다. 그게 히트를 쳤다.”

 -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사실 나 혼자 한 것은 없다. 나 역시 스노보드를 지금도 타고 있지만, 꾸준히 동호인들과 선수들의 의견을 들었다. 70~80년대 스노보드 저변 확대에도 동호인들의 힘이 컸다. 당시에 스노보드의 입장을 불허하는 스키장들이 많았는데, 동호인들이 스노보드 입장 허가 요청을 하면서 일이 잘 풀렸다.

 지금도 스노보더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경영의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매년 초 뉴욕 맨해튼에서 버튼 소속 스노보드 선수들과 주요 임원진들이 모여 신제품을 평가하는 ‘원탁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 조직문화가 좋고, 직원들의 근속년수가 10년이 넘는 비결은.

 “스노보드를 사랑하는 직원들로 뽑은 것이 가장 큰 비결이다. 미국 벌링턴에 있는 본사에는 눈이 60cm 이상 오면 회사 대신 근처 스키장으로 모이라고 회장 명의의 공지사항이 전해진다. 직원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놀러오기도 한다.”

 -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이번이 두 번째다. 90년대 초 부산에 부츠 제작을 위해 방문했었다. 그때만 해도 ‘이 나라에서 누가 스노보드를 탈까’ 싶었는데, 지금은 동계올림픽을 치르는 나라가 됐다. 지난번 러시아 소치 올림픽도 방문했지만, 평창올림픽도 관람할 생각이다. 버튼에서 후원하는 선수들의 활약상도 보고 싶고.(웃음)”

 - 스스로를 정의한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비즈니스맨, 그 이전에 스노보더이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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