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球와 함께한 60年] (31) 쌍방울과 김성근 감독

중앙일보

입력 2003.05.14 17:58

업데이트 2003.05.1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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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내가 구단주 대행으로 취임할 당시 쌍방울은 창단 3년째를 맞는 팀이었다. 신생 구단의 핸디캡을 안고 있는 쌍방울은 전력이 열세였고, 특히 투수력이 약했다. 나는 내가 취임한 92년부터 3년간은 이봉녕 회장에게 설명했던 '창립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또 3년간은 중위권에 진입할 수 있는 '숙련기'로 예상했다. 그리고 98년부터를 플레이오프에 진입해서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완숙기'로 내다보고 구단 운영을 해 나갔다.

92년 시즌이 끝난 뒤 초대 김인식 감독이 물러나고 신용균 감독이 취임했으나 성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신감독도 1년 밖에 버티지 못했다. 그리고 94년에는 한동화 감독이 팀을 이끌었다. 본인들은 열심히 노력했지만 승률은 3할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95년 시즌에는 한동화 감독이 도중하차하고 5월16일부터 김우열 코치가 감독대행 자격으로 팀을 맡아 지휘했다. 팀 분위기는 바닥으로 처졌고 팀 성적은 결국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95년 시즌이 끝난 뒤 나는 이의철 구단주를 찾아가 뭔가 커다란 개혁이 없이는 팀을 정상궤도에 진입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치밀하게 검토해서 우수한 지도자를 영입하는 것이 그 첫번째였다.

나는 우수한 지도자의 자격으로 네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데이터에 근거해 작전을 펼치고, 오로지 야구에만 전념하는 인물로서 인간적으로도 선수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네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은 김영덕 전 빙그레 감독, 김성근 해태2군 감독, 백인천 전 MBC감독 등이었다. 그 외 박영길.강태정.백기성.이희수.김우열 씨 등도 후보로 거론됐다.

이 가운데 김성근 감독은 신생 구단으로 출범해 선수단의 전력이 미완성이었던 당시 쌍방울의 사정상 가장 적임자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는 한마디로 야구에 미친 사람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선수와 더불어 같이 생활하며 선수 훈련시키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래서 궤도에 오른 팀보다는 신생 팀에게 어울리는 지도자다.나도 그런 점에 매력을 느꼈다.

김성근 감독은 고집이 세고 아마추어 스타일로 선수들을 혹사시킨다는 비난도 많이 받지만 당시 쌍방울은 그런 감독이 필요했다. 나는 이의철 구단주에게 "제 판단으로는 김성근 감독이 적임자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구단주는 젊은 지도자를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는 "우리 전북 출신의 김봉연이나 김준환 같은 코치들은 어떻겠습니까"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는 연고지 출신의 젊은 지도자를 맞아들여도 되지만 아직은 시기 상조인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전통을 만든 다음에 그런 감독을 영입합시다"라고 주장, 김 감독을 4대 감독으로 영입했다.

96년 시즌을 맞은 김성근 감독은 특별한 선수보강이 없었는데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고 97년에도 팀을 3위로 이끌었다. 뭔가 희망이 보이는듯했지만 쌍방울은 내부에서 곪아갔다. 96년에 모그룹에 부도가 나 97년부터 선수들을 팔아 팀을 운영했다.

급격한 전력 누수에 쌍방울은 98년에 6위로 떨어졌고, 나는 그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해 98년 시즌이 끝나고 난 뒤 사의를 표했다. 내가 물러나자 구단은 99년 시즌 중반에 김성근 감독마저 해임했다.

이용일 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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