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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기자의 '우사세']입시 설명회에 지친 엄마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11월 한 교육업체의 ‘대입 정시 지원 전략 설명회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설명회가 시작되기 30분 전쯤 설명회장에 나타난 한 엄마는 계단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가 눈에 띄었던 건 파김치처럼 지쳐 있는 얼굴 표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앉을 공간이 부족한데도 안간힘을 써 자신의 공간을 만드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어서입니다. 2~3시간 전부터 몰려든 사람 때문에 2만 석의 자리는 이미 꽉 찬 뒤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뻔뻔하지 않으면 다른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처럼 선 채로 장장 4시간 동안 이어지는 설명회를 들어야 했으니까요.

설명회 시작 10분 전, 갑자기 그의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여보세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조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지만 이내 언성이 올라갑니다. “정말? 합격했어?” 파김치 같던 그의 얼굴이 한 순간에 새색시처럼 밝아집니다. 아들에게서 수시 추가 합격 전화가 온 겁니다. 아까랑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승자(勝者)’가 돼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 말이죠. 자리에 남은 한 엄마는 “나는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입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미혼인 저도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대학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관문인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가 입시 전형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재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열려라 공부 12월 10일 1면 참고>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도 전에 ‘재수’를 결심했다는 한 엄마는 내년 입시를 위해 지금부터 설명회장을 찾는답니다. 자신이 정보를 잘 몰라 자녀의 앞길을 막은 건 아닌지 죄인이 된 심정으로 고3때보다 더 열심히 입시 전형을 공부하는 중이라고 하는 군요.

궁금합니다. 전략이 아니라 실력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그날이 오기는 올까요. 수능에서 만점 받은 학생도 정시 모집에서 탈락하는 마당에 도대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 건가요. 제가 낳은 아이가 대학을 갈 때쯤(적어도 20년 후)에는 우리나라 교육 제도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대입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모든 학생과 학부모를 응원합니다.

※전민희 기자의 ‘우사세(우리가 사는 세상)’는 담당 분야인 교육을 취재하면서 기사에서는 미처 하지 못했던 뒷담화를 풀어냅니다. 공교육·사교육·대입·고입·대치동 등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가 처한 교육의 현 주소를 낱낱이 전하고자 합니다. 또 교육 외에 사람 사는 얘기도 담습니다.

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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