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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5%는 가족 … 선진국의 2~3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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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13일 경기도 안산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벌어진 인질극은 인질 두 명이 살해되는 비극으로 종결됐다. 피의자 김모(47)씨가 별거 중인 아내를 불러 달라며 경찰과 대치하다 흉기를 휘둘러 아내의 전 남편과 의붓딸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8일에는 서울 은평구에서 별거 중인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자신의 11개월 된 딸을 감금하며 “죽이겠다”고 협박한 장모(51)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지난 6일엔 서울 서초동에서 아내와 두 딸을 목 졸라 살해한 강모(48)씨가 도주 6시간여 만에 붙잡혔다. 불과 8일 동안 잇따라 발생한 ‘가족범죄’들이다.

 존속·비속 살해 등 가족을 대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가족범죄는 2008년 1132건에서 2011년 933건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2012년부터 다시 늘고 있다. 2012년 1036건, 2013년 1142건이 발생했다. 특히 최근 6년간 매년 평균 1143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중 가족 살해는 매년 평균 56건이었다. 살인사건의 약 5%가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얘기다. 미국(2%)·영국(1.5%) 등에 비해 수치가 높다. 유형별로는 가족 폭행이 335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상해(2292건), 살해(336건), 협박(224건) 등의 순이었다.

 최근 가족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경제적 이유’를 첫손에 꼽는다. 정성국(서울지방경찰청 검시관) 박사는 “10년 전과 비교해 저성장이 계속되는 최근에는 경제 문제 때문에 가족범죄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 등이 파탄 날 경우 가족을 이용해 금전적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가 있다”며 “보험 살인이나 유산 상속을 노린 존속살인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늘어나는 ‘정신 질환’도 원인으로 거론된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에 따르면 존속살해 원인 중 정신질환과 연관이 있는 경우는 전체의 40%에 달한다. 정 박사는 “선진국형 병으로 과거엔 부각되지 않았던 우울증 등에 대한 진단이 최근 범죄 원인으로 많이 나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반면 과거 주요 가족범죄의 원인이었던 ‘배우자의 외도’는 크게 줄었다.

 ‘부모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가부장적인 가정문화’ 등의 한국적 문화 특성이 가족범죄를 유발한다는 견해도 있다. 자식이 일이 안 풀리는 것을 부모 탓으로 돌려 부모를 살해하거나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해 자식과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정 박사는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특성”이라며 “가정 불화가 높아지는 명절을 전후로 가족범죄 발생 비율이 높고, 어릴 때 부모에게서 받은 가정폭력이 상처가 돼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의식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사소한 가정폭력 사건이더라도 대형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경찰 등 수사기관이 적극 개입하고 강제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유승호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는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식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채승기·유명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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