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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거짓말도 표현의 자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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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아이는 밖에서 본 일이나 사람에 대해 침소봉대하거나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엮어 말하곤 했다. 가족들은 재미있게 들었고, 이에 아이의 ‘창작 본능’은 수그러들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창작물’을 떠들고 있었는데 옆에서 누군가 “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아이는 뜨끔했다. 한데 엄마가 말했다. “원래 머리 좋은 아이가 거짓말도 창의적으로 하는 거다.”

 그때 아이가 충격을 받았던 건 그 얘기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엄마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람에겐 거짓말과 참말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 일은 아이로 하여금 ‘허구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하게 했다. 그리고 10살짜리 아이는 샘솟는 거짓말의 욕구를 쏟아 부으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거짓말은 때로 파괴적이고 폭력적이다. 간혹 거짓말에 대한 법적 처벌 요구가 무성해지는 건 그래서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 당시 홍가혜라는 여인의 거짓말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자신이 민간 잠수부라며 해경이 제대로 구조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 TV 매체와 거짓말 인터뷰를 했다. 이에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구속됐고,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9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서다. 다만 재판부는 “이 판결이 홍씨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거짓말은 도덕적 심판을 받을 문제이지 법으로 단죄할 순 없다는 얘기다.

 매체를 이용한 허위사실 유포를 법으로 단죄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나온 터다. 2010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허위 경제 전망으로 민심을 동요케 했던 일명 미네르바 사건에서 나온 결정이다. (다만 개인 명예훼손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이로써 권위주의 시절,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허위사실 유포죄’는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졌다. 권위자가 사실이 뭔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시민들은 스스로 참과 거짓을 가릴 분별력이 있다. 홍가혜씨의 거짓말은 시민들이 잡아냈고, 미네르바의 거짓은 힘을 잃었다.

 ‘표현의 자유’. 요즘 프랑스 시사만평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무장테러 이후 세계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된 가치다. 이를 계기로 세계 자유 진영 국가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고히 하며 뭉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도 이번 테러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한데 이 성명엔 테러 규탄과 함께 세계일보의 ‘청와대 정윤회 문건’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가 국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담았다.

 실로 청와대의 고소 사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의식과 요구가 커지는 데 반해 집권층의 의식은 이를 따르지 못하는 후진성을 보여준다. 거짓말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는 건 ‘말’을 위축시킬 때의 부작용이 더 커서다. 사람들은 분별력과 판단력, 발전적 대안을 찾는 비판 능력이 있는데 이는 표현이 자유로울 때 더 성숙해지고, 의식이 성숙해지면 말도 순화된다. 샤를리 에브도 만평은 실제론 다른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 때론 역겹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물리적 폭력 앞에 세계인들이 ‘나도 샤를리’라며 펜을 들고 나서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테러는 바로 우리들의 분별력과 판단력에 대한 테러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누구도 이게 옳다 그르다고 주입해선 안 된다. 주입된 정의에 대한 맹신은 전체주의를 부르고, 분별력과 비판 능력을 말살시킨다. 거짓말을 잘 하던 아이는 참과 거짓, 거짓말과 창작을 구별할 줄 알았던 엄마의 분별력과 인내 덕분에 지금 기자로, 소설가로 살고 있다. 분별력과 비판 정신이 살아 있는 시민이 건강한 문명 사회를 만들고, 이런 성숙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선 안 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을 청와대에도 권하고 싶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