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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박정희·전두환 인사원칙 본받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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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실장

박근혜(이하 경칭 생략) 청와대가 소통 부족이 문제란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순진한 생각이다. 오히려 사람 고르는 안목과 능력 부족이 근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는 박근혜의 인사에 관한 한 실망한 지 오래됐다. 수첩인사의 폐해는 윤창중·윤진숙으로 충분하다. 정권 보위의 핵심인 청와대 민정실이 문건·항명 사태로 물어뜯는 것도 기가 막히다.

 국민의 시각에서 보자. 왜 우리가 윤창중의 ‘홀딱쇼’에 혀를 차야 하는가. 아마 윤진숙은 팽목항에서 이랬을지 모른다. “1차 피해자는 물에 빠진 세월호, 2차 피해자는 배를 잃은 청해진해운, 3차 피해자는 죽은 유병언….” 이들 모두 박근혜가 손수 고른 인물이다. ‘정윤회 문건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주연배우를 대통령이 직접 뽑았다.

 역대 대통령 중 인사정책은 단연 박정희와 전두환이 첫손에 꼽힌다. 취약한 정통성을 메우려 전국에서 최고의 인재를 골라 믿고 맡겼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전두환의 발언은 유명하다. 박·전의 공통된 DNA는 군에서 몸에 밴 인사원칙이다. 전쟁에선 정확한 정보와 작전이 생명이다. 당연히 균형과 크로스체크가 원칙이다. 박·전이 철저히 지역 안배를 적용한 것이나 상피(相避)제도로 부처마다 동향 출신의 장·차관은 금지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제기획원 출신을 경제부총리로 뽑으면 경제수석은 반드시 재무부 인사를 앉혔다. 기획원이 아이디어와 총론에 뛰어나다면 재무부는 현장과 각론에 강하다.

 이 원칙을 무시한 게 김영삼이다. 외환위기 당시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은 모두 기획원 출신. “펀더멘털이 괜찮다”고 합창하는 바람에 심각성을 몰랐다. “참다 못한 재무부 출신의 윤진식 조세금융비서관이 기존 보고계통을 무시하고 김광일 정치특보의 주선으로 대통령을 직접 면담해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직보했다.”(검찰의 외환위기 수사 보고서) 대면보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장면이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부속실 3인방이 수석들에게 “보고서만 놓고 가라”고 했다는 건 불길한 징조다.

 지난해 상반기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권력의 3대 중추인 검찰·경찰·국세청의 2인자가 동향, 그것도 같은 고교 출신으로 채워진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서울경찰청장(현 경찰청장)·국세청 차장이 대구 청구고 선후배였다. 대구·경북(TK) 출신들마저 “고교 평준화된 지 오래인데, 청구고 혼자 다 말아먹느냐”며 투덜댔다. 이뿐 아니다. 현 정부에는 동향 출신의 장·차관이 있는 부처까지 눈에 띈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청와대 측은 “청문회 문턱이 높아 올 사람이 없다”고 푸념한다. 거꾸로, 이는 ‘인재’ 하나로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올라선 한국에 대한 모독이다. 청와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A급 인재를 물색해 삼고초려하지 않는 게으름은 없었는지, 혹 박근혜의 ‘배신 트라우마’를 의식해 능력보다 충성심을 잣대로 과거 정부 인물들을 배척한 건 아닌지….

 이명박도 똑같은 오류를 범한 적이 있다. 1기 청와대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고위 인사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당연히 10년 넘게 현직을 떠난 인물들이 청와대를 차지했다. 그 후유증은 광우병 사태 때 드러났다. 현장과 끈이 떨어진 청와대 수석들은 서울지검 공안부장→서울지검장→검찰총장을 거쳐 올라온 시위 상황을 보고했다. 이명박은 “TV에 나온 뒤에야 보고하느냐”며 발을 굴렀다. 그 후 직전 차관들까지 수석으로 영입했고, 청와대와 일선 공무원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역사와 대화하겠다”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말처럼 웃기는 이야기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다. 요즘 누가 일일이 제품설명서를 읽고 구입하는가. 소비자들은 디자인과 성능만 마음에 들면 선뜻 지갑을 연다. 어제 박근혜의 신년 회견은 우리 사회의 흐름과 거스르는 분위기였다. 뇌리에 박힌 것은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안 바꾸겠다는 것뿐이다. 국민들이 청와대를 우려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뭔가 잘못된 길을 가는 느낌이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