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밥그릇 싸움으로 멀고 먼 공기업 개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박유미
박유미 기자 중앙일보 정당출입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유미
경제부문 기자

뇌물수수와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장석효(58)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11일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에 의해 기소된 지 17일 만이다. 공기업 사장이 비리 혐의로 물러나는 건 새삼스러운 광경은 아니다. 그러나 장 사장이 물러나기까지 과정은 영 개운치 않다.

 가스공사 공채 1기인 그는 2013년 7월 취임 때부터 산업통상자원부와 관계가 껄끄러웠다. 유력 후보였던 전 지식경제부 고위 관료 출신인 ‘관피아’ 인사를 밀어내고 뽑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부 출신 관료 몫으로 여겨지던 관리부사장 자리를 끝까지 공석으로 두며 버텨 산업부로부터 미운 털이 박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장 사장이 기소되자마자 산업부가 기다렸다는 듯 해임하라고 이사회를 압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주무부처와 최고경영자(CEO)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이사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 7일 열린 이사회에선 사장의 해임 건의 여부를 놓고 무기명 투표를 했다. 일부 이사는 “투표용지를 폐기하자”고까지 한 모양이다. 공기업 이사회의 운영 취지와 사외이사의 역할을 고려했을 때 무기명 투표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 공기업 사외이사는 “정확하게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의견을 낼 때는 반드시 서명을 한다. 한 번도 무기명 투표를 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무기명 투표 끝에 가스공사 이사회는 사장 해임안을 4대 3으로 부결시켰다. 주무부처의 뜻에 반기를 든 셈이다. 본지와 통화한 가스공사 이사들은 “사장이 회의 전에 SNS를 통해 ‘1심 판결 확정 전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산업부 관계자는 “사장이 상당한 로비를 하지 않은 이상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이 회사 이사 선임 과정에는 정피아-관피아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새누리당 충북도당 선대위 출신의 장만교 사외이사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김흥기 상임감사위원이 임명되면서 노조의 반발을 샀다. 낙하산 인사가 포함된 이사회가 비리 혐의 사장과 짬짜미를 해 해임건의안을 부결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를 감독해야 할 산업부도 어설프게 개입했다가 이사회의 반기에 망신만 당한 꼴이 됐다. 관피아와 정피아 척결의 대안이라 여겨졌던 내부 출신 사장이 비리 혐의로 리더십을 잃었는데도 사외이사가 방패막이가 된 장면 역시 볼썽사납다. 공기업을 제대로 이끌어갈 CEO를 찾는 투명한 시스템, 그리고 이를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가 바로 서지 않는 한 정부의 공기업 개혁은 구두선으로 그칠 게 뻔하다.

박유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