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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궁금증이 그의 디자인에서 숨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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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 08면

ⓒ Lorenzo Agius

지난해 9월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제 27회 앤틱 비엔날레.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주얼리 브랜드들 사이에서 처음 보는 브랜드 하나가 유독 빛났다. 언론 매체들이 앞다투어 소개한 덕분에 부스는 발디딜 틈 없이 복잡했다. 주인공은 세계적인 시계·보석 그룹 리치몬트(Richemont·54)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이 브랜드의 대표인 잠피에로 보디노(Giampiero Bodino).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선보인 43점의 주얼리는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았다. 자수정의 보라색과 비취의 녹색은 오묘한 색상의 조화를 이뤘고, 선명한 적색의 스피넬(첨정석) 반지는 드라큐라의 심장도 녹여낼 듯 강렬했다.

리치몬트 그룹의 새 브랜드 대표 잠피에로 보디노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리치몬트 그룹은 달랑 쇼룸 하나인 이 신생 브랜드에 왜 거액을 투자했을까. 이 브랜드가 앤틱 비엔날레에서 최고의 화제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9월부터 석달 가까이 접촉한 끝에 중앙SUNDAY S매거진은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그의 밀라노 쇼룸에 초대받았다.

밀라노 본사가 있는 빌라 모짜르트 입구

밀라노의 ‘빌라 모차르트’는 건물 전체가 담쟁이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30년대 건축가 피에로 포르타루피가 설계한 이 빌라를 보디노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손봤다. 대리석 바닥과 기둥, 벽난로와 천정의 석고장식 등은 놔두고 벽면과 창틀, 붙박이장만 모던하게 바꿨다. 5개의 붙박이 책꽂이는 진열장으로 만들어 주얼리를 전시했다. 곳곳에 자신이 그린 흑백 그림을 걸어 클래식한 스타일이 줄 수 있는 지루함을 덜어냈다.

스튜디오의 리서치 보드에는 영감을 주는 각종 이미지가 가득 꽂혀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물감으로 어지러웠다. 창문 앞 나즈막한 회색 철제 책꽂이는 30년간의 아이디어가 담긴 스케치북을 연도별로 정리해놓은 수납장이었는데 잠겨있었다. 하지만 가죽커버로 된 두꺼운 포트폴리오는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했다.

인터뷰를 위해 나타난 보디노는 패셔니스타였다. 캐주얼에 클래식을 믹스한 스타일이 아주 잘 어울렸다. 오른손에는 직접 디자인한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었다.

잠피에로 보디노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호기심이 많은 사람? 내 호기심은 오감(五感)의 안테나가 사방으로 작동하며 생겨난다. 나는 사회 현상이나 과거 혹은 미래, 자동차나 영화, 건축이나 패션, 심지어 수퍼마켓 진열장 등 일 관련 분야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하다. 궁금한 것을 이해하려 하다보니 많은 정보를 얻게 됐고 그것이 창작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자동차 디자인을 하다가 주얼리 디자이너가 됐는데 바로 적응했나.
“물론 보석과 관련한 테크닉은 따로 배웠다. 일 중에는 그 분야에 꼭 필요한 학습이 요구되는 것도 있지만 창작의 경우 꼭 그렇지는 않다. 난 오히려 디자이너에게 전문화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평생 한 가지만 디자인하며 인생을 보내기엔 창작력이 아깝지 않나. 여러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접목하면 시야가 넓어지고 더 원숙한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회사, 그것도 국제적인 패션 브랜드의 디자인을 동시에 하면 스타일 관련 리스크가 생길 것 같다.
“90년대에 프리랜서로 패션 브랜드들의 디자인을 할 때 각 회사들도 내가 그들만을 위해 일하길 원했다. 하지만 내 스타일의 디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각 회사의 요구와 필요를 바탕으로 그들을 위한 디자인을 제공했기에 스타일이나 디자인상의 문제는 없었다.”

트랜드 세터가 되면 유명해지고 싶어지지 않나.
“난 신제품 창작의 한 과정으로 존재하는 것에 만족했다. 스타 디자이너 시스템의 논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 내게는 대중에게서 받는 인정보다 디자인을 의뢰한 고객들로부터 받는 인정이 더 중요했다. 솔직히 창조자(예술가나 디자이너)에게 이름없이 활동하는 것이란 실망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인기는 내가 일을 하기 위한 목표가 아니라 일에 에너지를 쏟아부어 생긴 결과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브랜드 설립은 리치몬트 그룹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루퍼트 회장은 처음부터 뭔가 색다른 브랜드를 만들자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룹의 다른 브랜드 일이 너무 많아서 그가 ‘하자, 하자’ 해도 ‘다음에, 다음에’ 하며 미뤘다. 그러던 중 3년 전 그룹의 모든 CEO와 임원들이 함께 하는 연례회의가 남아프리카에서 열렸다. 회의는 항상 루퍼트 회장의 연설로 끝을 맺는데 이 날 그는 300명의 임원이 모인 자리에서 나한테 미리 언질도 하지 않고 ‘여러분, 우리 리치몬트 그룹은 ‘잠피에로 보디노’라는 이름으로 새 브랜드를 런칭하기로 결정했음을 알리는 바입니다’라고 말하며 회의를 마쳤다. 매우 당황했지만 때가 온 것으로 생각해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밀라노에 본사를 둔 이탈리안 브랜드를 생각했나.
“그렇다. 난 확신이 있었다. 럭셔리 그룹들이 기존 브랜드를 영입해 키우는 일은 자주 보아왔다. 하지만 제로에서 시작하는 브랜드 사업은 이제까지의 노하우가 있다해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감수하고 시작했다.”

당신의 브랜드의 특징은.
“까르띠에나 반클리프&아펠 같은 브랜드는 100년 동안 이어온 진화와 경험의 산 역사다. 이들은 새 리서치를 하더라도 오랜 역사동안 지켜온 틀 안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실험적인 디자인을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제약이 없다. 역사가 없는 브랜드를 만드는 기본 요소는 무엇인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와 보석으로 자유롭게 창작한다면 내 스타일은 자연스럽게 결정될 것이다. 그래서 내게 오는 고객들은 기존 브랜드에서 찾을 수 없는 신선함, 최고의 장인정신과 노하우, 그리고 튼튼한 그룹이 뒷받침된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찾는 사람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으니까.”

새 브랜드 탄생에 걸린 시간은.
“1년 반 동안 본사 겸 쇼룸을 만들 장소를 찾고 제품을 제작했다. 머릿속에는 이미 브랜드 이미지가 있었고 ‘원하지 않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에 신속히 진행할 수 있었다.”

다른 주얼리와 구분되는 점은.
“스타일을 특정 단어로 단정짓고 싶지 않다. 주얼리란 금, 다이아몬드 등 상상을 초월하는 비싼 가격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으로 어떤 식으로든 귀하게 다뤄져야 할 것들이다. 만일 모던한 것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수억짜리 다이아몬드를 플라스틱에 박는다면 난 바보일 것이다. 주인공(보석)의 가치를 더 높이는 디자인, 장인정신과 전통이 드러나는 주얼리를 만들 뿐이다. 제품의 차이는 볼륨감, 그에 접목된 기술, 착용감 등에서 나타난다. 이제까지 다른 브랜드 일을 하며 내 안에서 성장한 나만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매장 대신 쇼룸형식으로 꾸민 이유는.
“첫째, 개인적으로 길거리 쇼윈도가 상스럽게 느껴졌다. 배고픈 사람이 진열장의 빵을 보고도 돈이 없어 살 수 없다면 존엄과 겸손의 문제 아닌가. 둘째, 고객에게 고가의 제품을 선보이기에 적당한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주얼리를 착용해 본다면 구입의 경험마저도 유일한 것이 되지 않을까. 국제적 브랜드의 매장과 제품은 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다.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으니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이 곳에만 있다. 유일한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이곳까지 오는 것은 마음이 설레는 신선한 경험일 것이다. 밀라노 관광산업이나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매장에 대한 의견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브랜드 런칭을 파리 앤틱 비엔날레에서 한 이유는.
“수십년 동안 주얼리와 워치를 디자인했지만 나를 아는 대중은 없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빠르게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앤틱 가구와 그림, 하이주얼리 브랜드들이 참여하는 파리 앤틱 비엔날레를 떠올렸다. 부스 사용료가 비싸지만 돈만 낸다고, 혹은 럭셔리 그룹의 브랜드라고 무턱대고 자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참가 신청을 위해 모든 자료를 조직위원회에 보냈고 결국 허락을 받아 작은 부스를 얻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다.”

디자인을 할 때 시장을 고려하나.
“나는 쉬운 유혹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장(고객)이 좋아할 만한, 팔릴만한 디자인을 하는 것은 옳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비즈니스는 팔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모든 브랜드는 팔기 위한 것이지만, 향후를 전망하고 튼튼한 기반을 닦는 것도 중요하다. 브랜드를 이야기 할 때 언제나 메종(하우스)을 말하지 않나. 브랜드의 기본이 되는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특정 시장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나만의 스타일로 디자인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하다.”

제품은 모두 하나씩 밖에 없나.
“그렇다. 한 육체에 한 영혼이 있듯 내 주얼리들도 마찬가지다. 비엔날레에서 첫날 팔린 제품은 쇼윈도에서 바로 빼냈다. 정말 멋진 제품이었지만 이미 새 주인이 생겼는데 더 홍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홍보를 위해 이 모델 저 모델이 한 제품을 착용하는 것이나 특별한 기회를 위해 대여하는 것도 우리는 하지 않는다.”

제 2의 잠피에로 보디노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 2의 잠피에로 보디노가 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럭셔리 일은 화려해 보이지만 매우 힘든 일이다. 누구나 세상의 유일한 존재고 자신들만의 삶과 개성이 있다. 그것을 살려 자기 자신을 살아라. 사물을 주시하는 것을 멈추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라. 사교성 좋은 소셜 버터플라이가 될 필요는 없다. 파티나 술자리보다 전시회를 더 다녀라.”



잠피에로 보디노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토리노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건축과에 입학했지만 이걸 배우다 보면 저게 궁금해졌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그래픽 스튜디오를 들락거리며 디자이너들의 뒤치닥거리를 했다. 밤에는 야간 학교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다.

보디노에게는 인생을 반전시킨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1978년 저명한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운영하는 이탈디자인(Italdesign)에 근무하던 아버지 친구로부터 젊은 디자이너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는 건축 공부를 과감히 중단하고 이탈디자인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현대자동차와 관련된 일도 있었다. 2년여 동안 자동차 디자이너로 두각을 나타냈던 그가 주얼리로 갈아탄 것은 두 번째 인연인 불가리 덕분이다. 자동차 애호가였던 불가리의 전 회장 잔니 불가리(Gianni Bulgari)는 토리노의 자동차 디자인 학교를 방문했다가 벽에 걸린 보디노의 자동차 그림을 보고 만남을 요청, 학장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러브콜을 보낸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무살이었다.

로마로 거처를 옮긴 보디노는 주얼리 디자인을 하면서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엉뚱하게도 잔니 불가리 친구의 건축 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80년대 말 쟌니 불가리가 경영진에서 물러나면서 보디노는 자신을 고용한 회장이 떠난 회사에 남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프리랜서로 활동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고객이 많지 않은 로마에서 주얼리 프리랜서로 살기는 쉽지 않았다. 밀라노 이주를 결정하고 집을 구하던 그는 세 번째 인연을 접한다. 한 부동산 업자가 까르띠에에서 디자이너를 구한다고 얘기한 것. 리치몬트 그룹에 입성하게 된 계기다.

1990년대 들어 보디노는 까르띠에, 몽블랑의 주얼리와 시계 디자인을 하며 동시에 작은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구찌와 베르사체의 주얼리 디자인에도 관여한다. 2002년 그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면서 파리로 무대를 옮겼다. 그는 파네라이를 시초로 몽블랑, 예거 르쿨트르, 보메 메르시에의 시계와 주얼리를 디자인했고, 까르띠에의 판테라 컬렉션과 러브 컬렉션을 재런칭했으며 카레스 도르키데 컬렉션을 탄생시켰다. 반클리프&아펠의 하이 주얼리 워치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리고 2011년, 리치몬트 그룹의 요한 루퍼트(Johann Rupert) 회장은 잠피에로 보디노 브랜드의 시작을 알렸다. 보디노는 3년 동안 100여 점의 하이주얼리를 제작했고, 이는 밀라노 쇼룸에서만 예약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밀라노·파리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주얼리 디자이너 sunghee@stella-b.com, 사진 잠피에로 보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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