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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썰전] 경제논리 아닌 교육논리로

중앙일보

입력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
서울교대 교수

 경제논리 아닌 교육논리로

정부는 2015년도 경제정책 방향의 일환으로 9월 신학기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많은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9월 신학기제로 전환해 학제의 국제 통용성을 제고하고 국제 인력 교류 활성화, 학령인구 감소 대응, 학사 운영 효율성 제고 등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글로벌 시대에 교육 시간 리듬에 부합하는 학기제를 재정립해보자는 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1961년부터 54년 동안 유지돼 온 3월 학기제를 9월 신학기제로 변경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과정상 학생들의 취학, 진학과 수능 등 대입과 연계돼 있고 취업과 군 입대 등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9월 신학기제로의 전환은 단순히 교육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생활리듬 등 대한민국 전체의 시간표를 바꾸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정부의 9월 신학기제 검토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과거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 등 두 차례에 걸쳐 추진하다 실패한 이유를 살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6년 교육혁신위원회는 2011년 9월부터 9월 학기제를 시행한다고 밝히고 지역별 순회 공청회까지 열었다. 그러나 도입이 무산된 원인에는 제도 변경에 따른 긍정적 효과보다 교육·사회적 비용 과다와 효과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경제논리가 아닌 교육논리가 우선돼야 한다. 취학 학생 수가 줄어들어 경제활동인구가 부족한 이유나 2014년 11월 현재 8만9000명에 달하는 외국 유학생들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한 경제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학기제의 국제 통용성으로 외국 학생의 국내 유입이 늘지, 반대로 외국으로 유출되는 국내 학생이 증가할지 정확한 시뮬레이션도 필요하다. 경제 기대효과가 반대로 나타나게 되거나 국내외 유학생 일부의 편익을 위해 전 국민 삶의 리듬을 바꾸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느냐는 국민적 반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경제논리로 추진된 교육정책은 반드시 실패한 전철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셋째, 9월 학기제 개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연구와 대책이 우선 선행돼야 한다. 2008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9월 학기제 도입을 위해 소요되는 예산이 당시 기준으로 23조원에 달한다. 또한 ▶취학과 수능시기 변경, 취업시기의 조정 등 국민 삶의 큰 변화 ▶교육과정 재편을 위한 교실 시설·교원 증원 비용 발생 ▶특정 연도 졸업자 급증으로 인한 대입 및 취업 경쟁 심화 ▶정부 회계연도와 학교 회계연도 불일치 확대 등의 문제는 추진 내내 논란이 될 전망이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 국가기관의 회계가 10월에 시작되기 때문에 신학기가 9월에 시작돼도 별문제가 없지만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1990년대 김대중 정부 이해찬 교육부 장관 시절 대표적인 진보주의 실험 교육정책인 열린 교육(open education) 정책으로 학교 담장을 허물고 교실 문을 개방했지만, 교육적 폐해가 드러나 다시 원상복귀 하느라 많은 예산 낭비와 교육적 시행착오를 경험한 바 있다. 열린 교육정책이 ‘공간(Space) 개념 변화 정책’이라면, 최근 대한민국 교육정책 흐름은 9월 학기제, 9시 등교제, 시간선택제 교사제, 방학분산제, 자유학기제 등 ‘시간(Time) 개념 관련 5대 교육정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간 관련 정책은 추진과 안착 과정에서 교육·사회적으로 막대한 혼란과 비용이 수반된다. 따라서 9월 신학기제 등 시간 관련 5대 정책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사회적 합의 도출이 요구된다. 정부는 정책 제시와 더불어 정책 효과성 연구를 시작해야 하며, 찬반논쟁 중심보다는 국가백년지대계를 위해 어떤 준비와 선택을 할 것인지 국민공청회를 통해 국가·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등 충분한 국민여론 수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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