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 보너스' 끝 … LCD 현지공장 늘렸더니 수출 8% 감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새로운 메카로 부각되고 있는 선전 에서는 ‘모바일’ 경쟁이 한창이다. 세계 주요 스마트폰 메이커와 중국 현지 기업이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2일 선전의 대형 IT 유통센터인 화창베이 의 한 전자상가 입구. 행인에게 가려진 삼성전자의 로고가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한국 브랜드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선전=김상선 기자]

액정표시장치(LCD)는 한국의 대표적인 대 중국 수출품이다. 전체 중국 수출의 약 11.3%를 차지한다. 그런 LCD 수출이 2014년 1~11월 전년 대비 약 7.6%나 줄었다. 무슨 문제일까?

 지난해 12월 1일 방문한 중국 광저우(廣州)기술개발구의 LG디스플레이 공장. 약 12만㎡(약 3만7000평)의 널찍한 부지에 잘 정돈된 내부는 이곳이 최첨단 공장임을 알 수 있게 했다. LG는 지난해 7월 이곳에서 최신 모델인 8.5세대 LCD 패널 양산을 시작했다. 55인치·49인치·42인치 등 초고화질(UHD)과 풀HD TV용 LCD 패널을 생산한다. 월 생산량은 6만 장. 2016년 말까지 최대 12만 장으로 늘릴 계획이다. 공장 증설도 검토 중이다. 최재익 LG디스플레이 상무는 “공급처 가까이 오면서 생산과 유통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물류 비용도 줄었다”고 말했다. 중국 물량은 거의 중국에서 조달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업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지만 국가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LG디스플레이가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하면서 수출이 줄어들게 된다. 또 다른 LCD업체인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쑤저우(蘇州)에 현지 공장을 지었다. LCD 수출이 급락한 이유다. 지난해 1~11월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0.6% 줄었다. 5년 만의 마이너스 기록이다.

 전문가들은 경제학 용어인 ‘인구 보너스(인구가 야기한 성장)’를 빗대 우리 경제의 ‘중국 보너스’ 시대가 끝나 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으로 야기된 성장’이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안현호 무역협회 부회장은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중국은 어지간한 부품은 자국에서 조달하는 ‘풀 셋(Full Set) 공업 구조’를 구축했다”며 “우리가 중국의 성장 혜택을 나누던 시대가 끝나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술과 일자리가 중국에 빨려들면서 중국의 성장이 오히려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통산업에서조차 ‘중국 보너스’는 사라지고 있다. 광저우에서 만난 명보방직의 최보영 사장은 한국 원단을 들여와 중국에서 판다. 지난 10년간 중국 전역을 다니며 원단 유통망을 구축했다. 이제 제품만 팔면 되는 시점이 왔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겼다. 한국 원단의 경쟁력이 너무 떨어진 것이다. 최 사장은 “한국에서 가져올 게 없다. 한국에서 원단 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인식되며 일을 포기하다 보니 산업 단절이 생겼다. 중국 상인은 이제 이탈리아로 간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더 이상 한국의 기술을 필요치 않게 됐다는 얘기다. 섬유산업을 ‘비경쟁 분야’로 외면한 데서 나온 현상이다.

 업계에서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양국 간 ‘벨류체인(가치 사슬)’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안 부회장은 “중국 산업(기업)이 원하는 기술과 부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서플라이 체인(공급선)을 짜야 한다”며 “한국에서 중간재를 생산하고 중국에서 조립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농산물 분야도 종묘, 유기농 비료 등 고부가 영역은 있다”며 “경쟁력 떨어진다고 전체 산업을 버릴 게 아니라 산업 내에서도 우리가 중국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항목을 찾아내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플랫폼-콘텐트’ 교류를 FTA시대 한-중 양국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추천하고 있다. 박한진 KOTRA 중국사업단 단장은 “디자인, 게임, 브랜드 기획 등 소프트 콘텐트 분야는 중국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우리의 경쟁분야이지만, 이들 요소를 중국에 어떻게 공급할지에 대한 루트가 빈약하다”고 말했다. 알리바바 등과 같은 중국의 비즈니스 플랫폼에 우리의 콘텐트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루트를 개발하라는 지적이다.

◆특별취재팀 : 한우덕·하현옥·김상선 기자, 이봉걸 무역협회 연구위원 woody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