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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영화 ‘국제시장’과 세대격차 서로 어루만지는 날 오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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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류정화
JTBC 국제부 기자

“‘이래 살면 안 된다’ 이 말 아이가. 친구들이 다 그라든데….”

 아빠의 감상평 한마디가 나를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영화 ‘국제시장’ 이야기다. 우리 아빠도 영화 속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처럼 가족과 떨어져 해외에서 일하면서 우리를 먹여 살렸다. 그 기간만 20년쯤 된다. 덕분에 나는 등록금 한 번 내 손으로 벌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다. 아들딸을 무사히 키워낸 게 가장 큰 자부심인 우리 아빠도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삶을 후회하는 걸까. 아빠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차적으론 제 할 일 하느라 바빠 얼굴조차 보기 힘든 아들딸에 대한 불만의 표현일 터다. 거기에 아빠의 후회를 더 깊게 하는 건 노후에 대한 걱정이다. 국가와 가족을 위해 평생을 일했다고 자부하는데도 당장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앞날이 막막하다는 거다. 국민연금이나 노령연금만으로 그동안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엔 역부족이다. 대표적인 노령일자리로 꼽혔던 환경미화원이나 경비원의 채용 경쟁률은 20대 1을 훌쩍 넘긴다는 보도가 나온다. 30~40대 지원율도 높다고 하니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위축감이 든다. ‘국제시장’을 보러 우루루 몰려갔다는 부모님 세대의 ‘향수’ 이면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다.

 아버지 세대의 고생 후일담을 지겨워하는 젊은 세대도 이해가 된다. 해방 이후 가장 풍부한 교육을 받은 세대라고 불리지만 정작 청년 고용률은 40% 수준이다. 영화 속 주인공 덕수는 죽을 만큼 고생하고 또 그만큼 보상을 받지만, 제대로 고생할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멀게만 느껴진다. 면접관에게 곤란한 질문을 받고서 애국가 한 방으로 취업에 성공한 덕수의 이야기는 2015년 한국에선 판타지에 가깝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 세대’가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 아버지 세대를 온전히 이해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윤제균 감독은 “소통과 화합을 말하려 했는데 막상 영화를 개봉하고 나니 갈등이 폭발했다”고 당황스러워했다. 당황스러워만 하기에는 갈등의 골이 깊다. ‘정년 연장이냐 청년 일자리냐’ 하는 문제는 이미 언론사의 단골 시험 주제다. 한쪽의 희생으로 다른 한쪽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거다. 영화의 흥행 코드인 아버지 세대의 ‘향수’와 최근 논란을 촉발시킨 아들딸 세대의 ‘냉소’는 양쪽 모두에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대한 동전의 양면이다.

 영화는 영어 제목 ‘아버지에 대한 헌시(Ode to my father)’처럼 과거를 끌어와 아버지의 현재와 미래를 위로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아버지의 과거를 어루만지는 날은 언제쯤 올까.

류정화 JTBC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