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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뜨거운 ‘꽃분이네’…불판 뜨거운 곰장어집, ♪금순아…♪ 콧노래 절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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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46) 감독은 부산 사람이다. 동래구 낙민동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 시절부터 서울에 터를 잡았지만 여전히 입만 열면 부산 사투리가 먼저 튀어나온다. 부산에서 국제시장은 국제시장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부산 사람은 시장 주변의 먹자촌, 번화가를 통틀어 국제시장이라 부른다. 영화에서도 자갈치시장, 광복동 패션거리, 남포동 영화의 거리, 용두산공원, 초장동 산동네 등 국제시장 주변의 명소가 모두 등장한다. 윤 감독을 따라 부산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

지난해 12월29일 아침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윤 감독과 만났다. 영화에 등장했던 곰장어 식당 ‘원조집’ 구석에 그가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영화에서 씨름선수 이만기의 소년 시절 대역이 앉아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부산 여행 가이드로 내만한 사람이 없다고 전부터 생각했었다고! 꼼장어 좀 들어봐.”

윤 감독이 곰장어를 입안에 밀어넣으며 말했다. ‘꼼장어’는 ‘곰장어’의 부산 사투리다. 그러나 자갈치시장에서 곰장어는 곰장어일 수 없다. 꼼장어이어야 한다. ‘꼼장어’라고 발음하는 윤 감독의 말에서 정겨움이 묻어났다.

자갈치시장은 전국 최대의 어시장이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산 아지매(‘아낙’이 아니다. 꼼장어와 같은 원리다)들이 먹고 살겠다고 부산 남항에서 들여온 생선을 고무 대야에 놓고 팔던 것이 국내 최대의 어시장으로 발전했다.

“자갈치시장에선 10년 20년 정도로는 얘깃거리도 안 돼. 이 식당 의자만 해도 30년은 됐을 걸.”

윤 감독의 말에 식당 아지매의 고개가 연방 끄덕거렸다. ‘원조집’만 해도 역사가 반세기가 넘었다. 길가에 곰장어 대야를 놓고, 연탄불에 구워 팔다가 터를 잡은 지 56년이 됐다. 빨갛게 구운 양념 곰장어의 맛은 알싸하고 고소했다.

영화에도 등장한 자갈치시장의 숱한 생선 노점상과 건어물 가게를 지나 영도다리, 아니 영도대교로 자리를 옮겼다. 영도대교는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로 1934년 준공됐다. 66년 도개가 중단되었다가 재준공해 2013년 11월 도개가 재개됐다. 과거엔 하루 6~7회 다리를 올렸지만, 지금은 하루 1회 도개식이 거행된다. 정오가 되면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교통이 통제되고, 음악 소리에 맞춰 15분 동안 도개식이 벌어진다. 부산을 손바닥 보듯 하는 윤 감독도 영도대교 도개는 처음 본다고 했다.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이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의 입에서 구수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영화에서도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는 중요하게 사용됐다. 애초에는 시나리오에 영도대교 장면이 있었지만 분량 문제로 실제 촬영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단다. 대신 노래만 살아남았다. 도개식이 끝나자 윤 감독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춰졌다. 다리 밑 점집이었다.

“전쟁을 겪으며 약속의 장소 된 곳이 영도다리였어. 이산가족은 다 저 점집에 들러 가족의 생사를 물었다고.”


국제시장을 누비며

국제시장으로 들어서며 윤 감독이 입을 열었다. “국제시장이 영화 속 덕수랑 닮았어. 꼭 우리네 아버지 같아. 전성기를 보내고, 60~70대가 된 늙은 아버지 말이야. 예전만큼 혈기왕성한 기운은 덜해도 여전히 아늑한 기운은 있어.”

국제시장의 시작은 해방 즈음이다. 일본에서 귀국한 동포들이 챙겨온 물품과 일본인이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전시물자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군 군용물자가 대거 풀리자 시장 규모는 더욱 커졌다. 여기에 부산항으로 들어온 밀수품까지 뒤섞였다. 영화에서 덕수네 가족도 국제시장에서 수입 잡화를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윤 감독은 부산을 ‘개방’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은 다른 지역에 대한 편견이 별로 없어. 국제시장도 그렇고, 대부분이 피난민이나 재외동포가 토박이와 어우러져 발전시킨 동네거든. 부산이 의외로 지역주의가 없는 곳이야.”

국제시장에 들어서자 그가 추억에 잠겼다. “중학교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자주 따라왔었지. 시장에서 산 외제 크레용 하고 스케치북은 지금도 생생해. 그때만 해도 미제나 일제만 있으면 친구들이 ‘우와’ 하며 우러러봤거든.”

7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국제시장도 많이 늙었다. 시장 주변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손님이 줄었고, 굵직한 도매상도 하나 둘 시장을 떠났다. 한때는 고가 수입품 거래도 활발했지만, 지금은 영세한 소매상이 많다 보니 저렴한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시장 분위기는 여전했다. 국제시장에는 6개 동 1500여 개 점포가 있다. 시장을 찾는 주고객은 중년층이 대부분이었지만, 지난해 12월17일 영화가 개봉한 뒤로는 10~20대 손님도 많아졌다. 김용운(67) 국제시장상가번영회장은 “개봉 이전보다 방문객이 주말 평균 대여섯 배 주중 평균 두세 배 늘었다”고 말했다.

촬영지였던 국제시장 3공구 초입의 ‘영신상회’ 앞으로 갔다. 영신상회는 영화에서 덕수네 가족이 운영하던 가게 이름을 본 따 간판도 ‘꽃분이네’로 바꿔 단 상태였다. 신미란(38) 사장이 “영화 덕분에 매출이 30%나 올랐다”며 윤 감독을 반갑게 맞았다. 영화에서 꽃분이네는 수입 잡화점이었지만, 실제 영신상회는 양말·스카프·허리띠·시계 등을 팔고 있었다.

시장에서 윤 감독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시장 골목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장사를 방해한 것 같아 마음의 짐이 커. 자갈치시장도, 국제시장도 장사가 잘 되면 좋겠네.”


덕수네 집, 우리네 아버지의 집

국제시장을 나와 이웃동네 광복동과 남포동에 이르렀다. 윤 감독의 얼굴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광복동은 패션거리로, 남포동은 영화의 거리로도 유명하다. 의류점·카페·극장 등이 한데 모여있다.

좁은 골목으로 접어드니 냉면 집 ‘원산면옥’을 비롯해 개업 50년이 훌쩍 넘는 식당이 수두룩했다. 노점도 성업 중이었는데, 가장 긴 줄을 따라가 보니 씨앗호떡 노점이었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이승기가 호떡을 먹어 ‘이승기 호떡’이라는 별명이 붙은 집이었다. 10분을 넘게 기다려 호떡을 입에 넣었다.

남포동 영화의 거리는 초창기 부산국제영화제의 주무대다. 80년대만 해도 부산의 극장이 남포동 일대에 모여 있어 자연스럽게 영화의 거리가 형성됐다. 요즘엔 영화제 행사 대부분이 해운대와 센텀시티 인근 영화의 전당에서 열려, 예전만큼의 분위기는 아니다. 그래도 BIFF 광장 바닥에 김기영·임권택 감독, 엔리오 모리꼬네 등 영화 거장 56명의 핸드프린팅이 빼곡했다. 남포동 영화의 거리는 윤 감독이 10대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던 장소이기도 했다.

“남포동에서 ‘성룡’이 나오는 ‘오복성’(1983)을 봤었지 아마. 대학생 때인가 영화제 구경 왔다가 여기에서 강수연 선배를 처음 봤어. 강수연 선배를 보고서 ‘우와 연예인이다!’고 소리쳤던 게 지금도 생각 나. 그때만 해도 영화 감독은 대통령만큼이나 먼 꿈이었는데, 세월 참.”

“덕수네 집은 어디예요?”

윤 감독이 대답 대신 저 멀리 달동네를 가리켰다. 영화에서 덕수는 국제시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광부가 되어 독일로 떠났다가, 기술노동자 신분으로 베트남전쟁에도 뛰어든다. 그 역경의 세월을 버티고 돌아와 마련한 보금자리가 윤 감독이 가리킨 달동네 초장동이다. 실제로 초장동은 한국전쟁 당시 천마산(324m) 자락에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비탈 심한 달동네에 알록달록한 지붕을 얹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좁은 산복도로를 한참 올라 초장동에 닿았다.

영화에서 덕수의 쉼터로 등장하는 옥상에 올랐다. 비탈에 다닥다닥 늘어선 산동네 아래로 남포동 일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용두산공원 부산타워부터, 영도다리, 자갈치시장, 남항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영화에서 노년의 덕수는 옥상에 올라 먼바다를 내다보며 회상에 잠기곤 했다. 그는 이 옥상에서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추억하고, 전쟁 통에 헤어진 아버지를 생각했다. 덕수와 같은 자리에서 윤 감독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여행정보=국제시장(051-245-7389)은 부산역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다. 국제시장 옆으로 부평동 깡통시장, 남포동 영화의 거리, 광복동 패션거리가 바로 이어진다. 부산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용두산공원도 국제시장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 가족이 운영한 ‘꽃분이네’는 국제시장 3공구 초입에 있는 ‘영신상회’다. 영신상회는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갈 때까지 꽃분이네 임시 간판을 달고 운영할 계획이다. 자갈치시장 골목에 있는 ‘원조집’(051-246-4916)은 양념 곰장어 구이가 유명하다. 국내산 5만원부터. 영화에서 노년의 덕수가 살았던 집은 초장동 초장중학교 근처에 있다. 초장동을 걸어서 가기엔 길이 가파른데, 134·190번 버스를 타면 마을에 들어갈 수 있다. 달동네 정상에 있는 한마음행복센터(051-240-6575) 전망이 제일 좋다.

글=백종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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