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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길 있다 … 대치동 강사, 뉴욕학교서 '수학앱' 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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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쇄 창업의 씨앗 창업공간 디캠프에 입주한 스타트업 뤼이드(Riiid)가 7일 오답노트 앱 ‘리노트’(Renote)를 출시했다. 리노트는 각종 문제집에서 사용자가 틀린 문제를 다시 불러오기 해 반복 학습하도록 도와주는 앱이다. 국내 대표적인 창업캠프 K-스타트업에 참가했던 장영준 뤼이드 대표는 “국내외 멘토들에게 받은 조언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가운데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뤼이드의 김교은·노민성·고승태·허재위·장미경·이재철씨. [오종택 기자]

수학교육 소프트웨어 ‘노리수학’을 개발한 스타트업 노리(KnowRe)의 본사는 미국 뉴욕에 있다. 뉴욕시 공립학교들이 노리의 고객이다. 한때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이름을 날린 수학 강사 출신 김용재(38) 대표는 학생이 게임하듯 재밌게, 자기 수준에 맞는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게 하는 ‘노리수학’을 개발했다. 그는 기초는 허약한데 선행학습 진도에 끌려 다니는 대치동 아이들을 보며 창업을 결심했다. 하지만 여전히 족집게·선행 학원 위주인 국내는 시장이 좁았다. 눈을 밖으로 돌렸다. 일찌감치 노트북·태블릿PC가 공립학교 교실에 보급된 미국이 보였다. 김 대표는 “더 큰 시장에서 더 큰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면 국경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뉴욕시교육청 주최 교육앱 대회 1등을 차지하는 등 인정을 받은 노리는 이제 교육열 높은 한국·중국·일본 시장으로 역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뛰는 한국 스타트업(초기 창업 기업)이 늘고 있다. 10여 년 만에 다시 불어온 창업 붐은 무대를 글로벌로 확장했다. 구글 앱마켓 건강관리 앱 1위 ‘눔 다이어트 코치’를 만든 눔(Noom), 화장품 골라주는 서비스 ‘미미박스’도 그런 경우다.

 대학 2학년 때 자퇴한 정세주(36) 눔 대표는 “넓은 곳에서 뛰겠다”며 뉴욕으로 건너갔다. 뮤지컬 제작사업이 망해 할렘가까지 밀려갔던 정 대표는 구글 엔지니어 출신 아텀 페타코프를 만나 눔코치를 만들었다. 현재 전 세계 2000만 명이 5개국어로 눔코치를 이용한다. 최근엔 중국 샤오미가 투자한 웨어러블 기기 제조사 ‘미스핏’과 건강관리 데이터를 연동하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미미박스는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유명 액셀러레이터(창업 육성기관) 와이컴비네이터(YC)의 창업캠프 참가권을 따낸 스타트업으로 유명하다. YC는 글로벌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 등을 키워낸 창업 명문대 같은 곳이다. YC의 투자금으로 실리콘밸리에 미국지사를 세운 하형석(33) 대표는 요즘 중국 시장을 노크 중이다.

 이들 글로벌 창업가는 한결같이 “한국에서 1등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미국·중국 등 해외시장을 밟지 않고서는 기업가치 조(兆) 단위짜리 거대 기업으로 덩치를 불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투자하는 벤처자본도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다국적이다.

 이들처럼 글로벌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요즘 서울 강남 테헤란로로 몰려들고 있다. 2년 전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만든 창업공간 디캠프(D.camp)를 비롯해 네이버 등 인터넷 기업들이 설립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마루180 등에는 매일 새로운 꿈이 꿈틀댄다. 올해 2분기에는 구글도 여기에 가세한다. 구글이 런던·텔아비브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만드는 창업공간 구글 서울캠퍼스가 문을 연다. 구글코리아는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을 위한 창업 프로그램으로 잠재된 창업 열기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희망의 씨앗은 더 있다. ‘도미노 창업가’들이다. 1990년대 창업한 벤처 1세대들이 일회성 대박 신화를 썼다면, 도미노 창업가들은 ‘창업이 직업’이다. 창업한 기업을 매각하고, 여기서 번 돈을 다시 창업 자금으로 쓰는 연쇄창업가다. 후배 창업가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고 투자를 하는 것도 이들이다. 실리콘밸리의 ‘페이팔 마피아’처럼 국내에도 벤처로 번 돈을 벤처에 다시 투자하는 그룹이 생기는 셈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창업 선순환의 시작이다. 전자결제업체 페이팔의 창업 멤버들은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한 후 다시 유튜브·테슬라 등을 창업하거나 벤처기업에 투자해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냈다.

 국내에선 지난해 파이브락스 매각으로 새로운 벤처 신화를 쓴 노정석(39)씨가 대표적인 도미노 창업가다. 그는 네 번 창업해서 세 번 엑시트(투자금 회수)했다. 지금은 다섯 번째 창업을 준비 중이다. 구글 매각 이후 에인절투자자가 된 그는 2년 전 스타트업을 만드는 스타트업 ‘패스트트랙아시아’를 설립했다. 장병규(42) 본엔젤스 대표는 네오위즈·첫눈을 연달아 창업하고 매각한 뒤 에인절투자자가 됐다. 배달 앱 1위 ‘배달의 민족’을 만든 우아한형제들이나 SK플래닛에 인수된 매드스마트, KT에 인수된 엔써즈는 모두 장 대표의 투자와 조언으로 성장했다. 벤처 1세대의 주축인 김범수(카카오)·김정주(넥슨)·김택진(엔씨소프트)·이재웅(다음)·이해진(네이버) 등 5명도 함께 기업(C프로그램)을 창업해 새로운 벤처 모델을 제시했다.

 이제 관건은 창업 성공률이다. 실패가 두려워 창업을 꺼리던 분위기는 깨졌지만 성공 사례가 늘어야 현재의 창업붐이 계속 이어질 수 있어서다. 본엔젤스 장병규 대표는 “창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오래 살아남는 건 아무나 못한다”며 “자체 창업 생태계가 단단한 미국·중국 이외의 다른 해외시장을 스타트업들이 개척할 수 있도록 정부가 창업 지원 정책을 더 촘촘하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영훈·이상재·손해용·박수련·김영민 기자 filich@joongang.co.kr

◆연쇄창업자(serial entrepreneur)=성공 후에도 창업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혁신 기회를 찾는 기업가 정신이 뛰어난 이들이다. 전자결제업체 페이팔 출신의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 기업 테슬라모터스, 우주항공사 스페이스X, 태양에너지 기업 솔라시티 등을 창업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연쇄창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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