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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컵스 '염소의 저주' 풀릴까 … 타임머신 영화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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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89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미국 공상과학영화 ‘백투더 퓨쳐2’가 그린 미래는 2015년이다. 1985년을 살고 있던 주인공 맥플라이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뒤 세계를 여행한다. 그는 시카고 시내에 도착했는데, 건물 위 전광판에는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컵스가 마이애미를 꺾고 월드시리즈(WS) 우승을 차지했다는 문구가 뜬다. 화들짝 놀란 맥플라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빈다.

 30년 전에도 컵스의 우승은 타임머신을 타야 실현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후에도 컵스는 우승하지 못했다. 2015년은 영화가 예고했던 컵스 우승의 해다. MLB 최고 인기팀 중 하나인 컵스는 1908년 WS에서 우승한 뒤 지난해까지 106년 동안 WS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많은 MLB 팬들은 이를 ‘염소의 저주(curse of the Billy goat)’ 때문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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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비노 저주’ 푼 엡스타인 영입=컵스와 디트로이트의 WS 4차전이 열린 1945년 리글리필드. 염소 목줄을 파는 빌리 시아니스가 염소를 데리고 야구 구경을 왔다. 컵스 담당자는 악취가 난다는 이유로 그와 염소를 4회가 끝난 뒤 쫓아냈다. 시아니스는 “앞으로 다신 이곳에서 WS가 열리지 못할 것”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당시 2승1패로 앞섰던 컵스는 3승4패로 우승을 내줬다.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이후 컵스가 정말로 우승하지 못하자 빌리의 조카 샘 시아니스가 염소를 데리고 리글리필드를 여러 번 찾았다. 2003년 컵스 팬들은 염소를 몰고 휴스턴의 홈 구장으로 진입했다. 입장을 거부당하자 그들은 “(염소의) 저주는 휴스턴으로 옮겨가라”고 외쳤다. 그해 컵스는 플로리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 거짓말 같은 역전패를 당했다. 6차전에서 3-0으로 앞선 8회 파울플라이가 될 타구를 컵스 팬이 가로채는 바람에 아웃을 잡지 못했고 결국 3-8로 역전패했다. 컵스는 7차전에서도 패해 WS에 오르지 못했다.

 컵스는 ‘저주를 푸는 마법사’ 테오 엡스타인 사장을 2011년 영입했다. 뛰어난 지략가인 엡스타인은 보스턴 단장이었던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보스턴을 86년 만에 WS 우승으로 이끌었다. 컵스에 온 엡스타인은 느긋했다. 큰 돈을 쓰지 않고 유망주를 모았다. 2012년 101패(61승), 2013년 96패(66승)를 당하는 동안에도 지갑을 열지 않았다. 지난해 유망주들이 성장하며 73승89패를 거두자 엡스타인이 움직였다. 템파베이에서 9년간 754승을 거둔 명장 조 매든 감독을 데려왔고, 지난해 16승을 거둔 존 레스터를 6년 총액 1억5500만 달러(약 1704억원)에 사들였다. 컵스 팬들은 “올해야말로 염소의 저주를 풀 기회”라며 기대하고 있다.

 MLB에서 컵스만큼 우승이 간절한 팀은 클리블랜드다. 1948년을 끝으로 WS 우승을 하지 못하자 ‘와후 추장의 저주’라는 말이 생겼다. 팀 마스코트의 빨간 피부색과 우스꽝스러운 표정은 미국 원주민 인디언을 비하한 거라는 항의가 쏟아진 것이다. 지난해 7월 민주당 에릭 키어니 상원의원은 “이제 새 마스코트를 사용할 때가 됐다. 클리블랜드가 인디언스 팀명을 쓴 게 2015년으로 100년째다. 와후 추장 캐릭터의 은퇴식을 치르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켄터키 할아버지를 강에 던지다니=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에는 ‘커넬 샌더스의 저주’가 있다. 샌더스는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의 창립자로 모든 매장 앞에 그의 모형이 서 있다. 85년 한신이 일본시리즈(JS)에서 우승하자 흥분한 팬들은 오사카의 상징 도톤보리강에 뛰어들었다. 일부 팬들은 KFC 매장에서 샌더스 동상을 가져와 강에 던졌다. 동상이 한신의 강타자 랜디 바스(미국)와 닮았기 때문에 기쁨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였다. 샌더스 동상이 강 아래로 사라진 뒤 한신은 한 번도 JS 우승을 하지 못했다.

 샌더스 동상은 2009년 강 바닥을 청소하던 중 발견됐다. 이 동상은 한신의 홈인 고시엔 구장 옆에 전시돼 있다. 지난해 한신은 마무리 오승환(33)의 활약을 앞세워 요미우리를 꺾었다. 29년 만에 JS에 진출했지만 이대호(33)가 4번타자로 나선 소프트뱅크에 패했다. 구단 창립 80주년을 맞은 한신은 올해 반드시 저주를 풀어내겠다는 각오다.

 응원 열기가 한신 팬을 능가하는 한국의 롯데 팬들은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1992년 빙그레를 꺾고 우승한 후 22년째 무관이다. 이를 두고 ‘최동원의 저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84년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의 우승을 이끈 최동원은 89년 선수협의회 결성 주동자로 지목돼 삼성 김시진과 트레이드 됐다. 은퇴 후에도 그는 부산 사직구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최동원의 어머니 김정자 씨는 “동원이는 ‘내가 나고 자란 부산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항상 말했다. 그런데 롯데 구단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트레이드한 뒤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렸던 보스턴처럼, 롯데에도 ‘최동원의 저주’가 내려졌다는 말들이 떠돈다.

 롯데는 최동원이 2011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야 그의 등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며 예우했다. 2013년에는 사직구장 앞에 최동원 동상이 세워졌다. 지난해에는 부산 지역 야구인과 팬들의 힘으로 최고의 투수에게 시상하는 ‘최동원상’이 만들어졌다. 롯데는 고인이 된 최동원과 화해했지만 전력은 여전히 우승권에서 멀다.

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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