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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전자담배 선풍에 뒷북치는 복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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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띠링∼.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보건복지부에서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전자담배의 유해성 관련 전문가 의견 및 정부정책 방향’이라는 기자 설명회 공지. 다음 날 오전, 개략적인 내용을 담은 e메일까지 왔다. ‘전자담배 기체상 유해성 연구 결과 최초 보도’라는 문구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비공개 형태의 설명회는 갑자기 공식 브리핑으로 바뀌었다. 복지부가 전자담배에까지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었다는 생각에 세종시 청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6일 뚜껑을 연 전자담배 관련 브리핑은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유해성 입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 용역 연구 자료부터 ‘구문(舊聞)’이었다. ‘최초 보도’라 이름 붙인 연구는 이미 2012년 실시돼 정부 정책 연구물 공개 인터넷 사이트에 등재된 상태였다. 기자들이 뒤늦게 발표하는 이유를 캐묻자 “(연구 당시엔) 전자담배 수요가 이렇게 급증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근 3년간 출시된 전자담배에 대한 독성 연구는 “올해 상반기 중 조속히 실시한다”고만 밝혔다. 그동안 전자담배 연구에 손을 놓고 있었다고 시인한 것이다.

 왜 굳이 이 시점에 3년 전 자료를 끄집어 내면서까지 유해성을 강조하고 나서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들께 전자담배는 금연보조제가 아니라 담배 그 자체라는 얘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명쾌한 설명이 아니었다. 지난해 9월 담뱃값 인상 발표 이후 전자담배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청소년들의 이용이 늘고 있다는 기사까지 쏟아졌다. 일반담배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정상적이라면 4개월 전, 늦어도 담뱃값 인상에 대비해 흡연자들이 전자담배를 줄지어 사던 지난 연말에라도 전자담배의 실상을 알렸어야 했다.

 복지부는 해가 바뀌고서야 뒷북을 치고 있다. 부랴부랴 설익은 대책을 냈지만 그마저도 실효성은 의문이다. 복지부의 권한으로는 기껏해야 온라인 광고·판매의 모니터링과 고발 조치만 가능하다. 규제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벌금 확대나 금연구역 내 흡연 단속 등 실질적인 규제의 권한은 다른 부처에 있다. 복지부는 미리 꿰뚫고 있어야 할 전자담배 시장 현황에 대해서도 “최대한 빨리 파악하겠다”며 대충 넘겼다.

 이날 오전 복지부에 모인 취재 기자들은 사전 발표 내용에 근거해 ‘1면용’ 기사를 쓰기 위해 부산히 움직였다. 하지만 브리핑을 마친 후엔 자료 요청과 볼멘소리가 쏟아졌을 뿐 오전의 긴장감은 없었다. 기사 가치는 급속히 떨어졌다. 국민들에게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널리 알리겠다는 복지부의 의도는 빗나가고 있다.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