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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로제타 탐사선과 영화 '인터스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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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을미년이 밝았다. 갑오년은 하늘·땅·바다에서의 재난 시리즈 속에 저물어갔다. 하지만 뉴스다운(?) 뉴스도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혜성 착륙’이다. 유럽우주기구(ESA)가 2014년 11월 12일 탐사선 로제타에 실린 로봇 필레(Philae)를 혜성 67P/C-G(Churyumov-Gerasimenko)에 착륙시킨 것이다.

 로제타 스페이스 미션은 놀랍다. 10년8개월 동안 로제타는 지구를 떠나 64억㎞를 날아갔다. 혜성 67P는 초당 38㎞의 고속으로 태양 주위를 돈다. 지름은 4㎞, 중력은 지구의 수십만분의 1이다. 로제타는 혜성과 같은 속도로 따라 붙어 세탁기만 한 로봇을 23㎞ 상공에서 표면에 꽂았다.

 필레는 착륙 뒤 57시간 일하다가 잠들었다. 배터리가 죽기 전 67P의 수증기 조성이 지구상의 물과 상당히 다름을 알려줬다. 그러니 지구상의 물이 혜성에서 왔으리란 가설은 흔들리게 됐다. 그늘에 착륙한 탓에 필레의 태양 전지판은 하루 한 시간 반밖에 빛을 못 받는다. 충전이 잘돼 미션을 완수하게 된다면 코스모스의 신비를 얼마나 벗길는지 서스펜스 드라마다.

 로제타를 응원하듯 두 작품이 화제를 모았다. TV 채널(NGC)로 방영된 13부작 ‘코스모스’와 크리스토퍼 놀런(Nolan) 감독의 SF 영화인 ‘인터스텔라’다. 코스모스는 원래 1980년 TV 시리즈와 책으로 나왔다. 그 시절 세계 60개국에서 5억 명이 시청했다. 저작자인 칼 세이건(Carl Sagan·1934~96년)은 과학 대중화와 커뮤니케이션의 거장이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1960년 시카고대)은 금성의 온실효과 연구였다. 2014년 새 시리즈의 호스트를 맡은 닐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은 고등학교 때 코넬대를 방문해 그를 만났고 천체물리학자가 됐다. 2014년판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영상으로 젊은이들에게 시청을 권하는 이례적인 상황까지 연출됐다.

 대학교수 시절 교양과학 강의를 어떻게 할까 고심하다 코스모스 시리즈를 편집해서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세이건은 138억 년의 우주 나이를 1년으로 압축해 우주력(宇宙曆)을 만들었다. 정월 초하룻날 빅뱅(Big Bang)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한다. 우리 태양계의 태양은 8월 31일, 지구는 9월 21일에 태어난다. 인류의 역사시대는 12월 31일 오후 11시59분46초부터 찰나의 사건이다. 100년을 사는 인간 존재는 초미세먼지도 못 된다.

 그렇듯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대우주를 향해 탐사에 나선 지 반백 년이 훌쩍 넘었다. 유학 시절에 봤던 68년 SF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거기서 우주를 둥둥 떠도는 인간의 모습은 가슴을 서늘케 했다. 2014년 놀런 감독은 야심작 ‘인터스텔라’에서 항성 간 여행으로 지구 구출의 답을 찾는다. 과학 자문을 맡은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의 킵 손(Kip S. Thorne) 교수는 세이건과 가까웠다. 감독의 동생인 조너선 놀런은 각본을 쓰느라 칼텍에서 4년간 상대성이론과 웜홀(wormhole) 이론을 공부했다.

 ‘인터스텔라’는 인간의 3차원적 인식으로는 감조차 안 잡히는 가상적 현실을 영상화한다. 블랙홀 ‘가르강튀아’가 그렇다. 블랙홀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중력이 너무 커 빛조차도 빠져 나오지 못한다. 영화는 그것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구성, 엄청나게 빛나는 발광의 영상으로 묘사했다. 빛이 못 나오는데 빛나다니, 이유가 있다. ‘중력렌즈’ 효과 때문이다. 중력 때문에 빛이 휘어 블랙홀 뒤편의 별빛을 본 것이다. 블랙홀은 64년 X선으로 확인돼 시그너스(Cygnus) X-1이라 명명됐다.

 ‘인터스텔라’의 클라이맥스는 블랙홀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거기 들어간 주인공 쿠퍼는 5차원 공간에서 인류를 구할 중력방정식의 단서를 지구로 보낸다. 중력을 이용해서다. 여기서 질문이 잇따른다. 블랙홀 내부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정보를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웜홀을 통해 다른 우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웜홀은 아직 관측되지 않았다.

 ‘인터스텔라’가 미지의 가설적인 개념을 형상화했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SF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 많다. 과학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경계에 있다. 생명의 기원을 찾는 우주 탐사는 과학기술의 성취다. 스푸트니크(Sputnik) 발사 후 “57년은 인간의 지적 성취가 국부(國富)와 군사력을 앞지르는 시점이 될 것”이란 논평도 나왔었다.

 ‘인터스텔라’를 보며 도입부가 공감이 되질 않았다. 지구를 파국에 이르게 해놓고 우주에서 답을 찾다니…. 우주 신천지를 개척하는 기술이라면 지구부터 살리는 게 마땅하지 않나. 그런데 다시 곱씹어 보니 ‘인터스텔라’의 이런 시나리오는 역설적으로 우주 속 인간 존재의 재발견을 통해 ‘지구를 살리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