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국 상하이 증시는 오랜만에 투자자들에게 웃음을 안겨줬다. 연초만 해도 코스피와 비슷한 수준인 2000포인트 근처에 머물던 지수는 최근 3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연초 이후 50% 가까이 오른 셈이다. 덩달아 중국 펀드도 쏠쏠한 성적을 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상하이 지수에 투자하는 중국 본토 펀드는 연초 이후 평균 36%(23일 기준)의 수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홍콩 시장에 투자한 중국 펀드가 낸 수익(6.6%)의 다섯배 수준이다. 주요 해외 펀드 중에선 인도 펀드(37.2%) 다음으로 높은 성과다.
하지만 투자자들에겐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07년 당시 상하이 지수는 연초 2600포인트대에서 출발해 그해 10월 6000포인트를 돌파했다. 상하이 증시가 1만 포인트까지 오를 거란 전망까지 나왔다. 미래에셋 차이나 솔로몬(미차솔)·신한BNPP 봉주르 차이나(봉차) 펀드 등에는 뭉칫돈이 몰렸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이듬해 가을 상하이 증시는 2000포인트 아래로 주저앉았다. 올해 주가 급등에도 중국 펀드에서 2조원 넘는 돈이 빠져나간 것도 당시의 아픔 때문이란 분석이다.
혹시 내년에도 중국 증시가 2007 ~2008년처럼 상승분을 반납하고 주저앉는 건 아닐까. 본지는 주요 증권사 중국 담당 애널리스트에게 내년 상하이 증시 전망을 물었다. 애널리스트들은 대체로 “올해처럼 가파르게 오르진 않겠지만 내년에도 여전히 상승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상하이 지수가 4000포인트(KDB대우증권)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빠지더라도 2400포인트 이하로 내려가긴 어렵다는 분석(삼성증권)도 나왔다.
이유는 올해 중국 증시를 밀어올린 호재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 같아서다. 올해 상하이 증시는 유동성과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올랐다. 신한금융투자 강효주 연구원은 “홍콩과 상하이 거래소 간 교차매매를 허용하는 후강퉁 제도로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고 금리 인하 등으로 정부의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정책과 유동성 효과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상하이 증시 개방으로 내년 MSCI 지수에서 중국 비중이 늘어날 경우 인덱스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등 패시브 자금이 추가 유입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내년에 금리를 더 내릴 거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주가는 오르는데 기업 이익은 제자리를 맴돌고 경제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이에 대해 유안타증권 박기현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증시와 비교하면 여전히 중국 증시는 30~40% 정도 싸다”며 “성장률 둔화 등을 감안해도 여전히 밸류에이션 면에서 매력적이다”라고 분석했다. 한국투자증권 윤항진 연구위원 역시 “원래 주가는 경기보다 먼저 움직인다”며 “예상대로 내년 하반기 중국 경기가 살아난다면 현재 주가가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상하이 증시가 부담스럽다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홍콩 증시를 주목해 볼만하다. 중국 주식시장은 본토에 상장돼 있는 상하이 A주와 심천 B주, 홍콩에 상장된 H주·레드칩·P칩 등으로 나뉜다. 중국 기업 상당수가 상하이와 홍콩 거래소 두 곳에 동시상장돼 있다. 우리투자증권 신환종 연구원은 “홍콩 증시는 현재 상하이보다 10% 이상 저평가된 상황이라 중장기적으로 보면 홍콩 증시도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한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