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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임금 19% 올리겠습니다" 경비원 "인상분 40%는 반납하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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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9일 일산 호수마을 4단지 아파트에서 이기성 경비원·유철상 관리소장·황진선 입주자대표회장·서영홍 경비원이(왼쪽부터) 화합을 다짐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아파트 경비원들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경비 절감 차원에서 감원 바람이 불고 있는데다 무인경비시스템이 속속 들어서면서 설 자리도 좁아졌다. 그런 가운데 주민들과 경비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감원 없이 ‘상생의 해법’을 찾는 아파트들이 있다. 472가구가 사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마을 4단지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이 아파트는 지난 9월 1억5400만원을 들여 단지 내에 CCTV 16대를 추가 설치하고 통합상황실을 마련하는 등 무인경비시스템을 갖췄다. 하지만 경비원 수는 20명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임금은 내년에 19% 올린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최저임금 적용률도 90%에서 100%로 높아지는 데 따른 것이다.

 당초 주민들 사이에선 “경비원 수를 줄여 관리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았다. 하지만 “동고동락했는데 여기서 떠나면 오갈 데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커졌다. 결국 주민투표를 실시해 인원을 줄이지 않기로 했다. 총 임금 7100만원이 늘어나는 데 따른 추가 부담은 매달 가구당 1만2535원 꼴이다. 황진선(76) 입주자대표회장은 “모두 60세 이상의 고령에 10년 이상 근무한 경비원도 8명이나 되는 등 한가족처럼 지내왔다”며 “주민 상당수가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데는 경비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한몫했다. 최근엔 잡초가 무성하던 공터를 배드민턴장과 체력단련장으로 꾸몄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경비원들이 자발적으로 한 일이었다. 아파트 가장자리엔 길이 460m 산책로를 조성했다. 주민들은 이런 경비원들을 ‘관리인’이라 부르고 있다. 

 주민들이 고용을 유지하고 임금을 올려주겠다고 하자 경비원들도 화답하고 나섰다. 임금인상분의 40%를 반납하기로 뜻을 모았다. 13년째 근무 중인 경비원 이기성(70)씨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일자리를 잃지 않게 도와준 주민들께 고마울 따름”이라며 “더욱 열심히 일해 보답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원시 영통지구 신원미주아파트 주민들도 경비원 10명을 내년에 그대로 고용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입주자대표회의는 현재 144만1000원인 임금을 내년에는 161만3000원으로 11.9% 올려주기로 했다.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145만원가량인데, 그보다 더 높여주는 것이다. 이 아파트는 용역회사를 통해 경비원을 고용하지 않고 직접 고용하기에 용역회사로 나가는 수수료가 없어 상대적으로 후한 임금을 준다. 

 임금을 올리기로 주민들이 결정하자 경비원들은 전체 근무시간 중 휴식시간을 1시간 늘려 주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휴식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실제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백길현(52) 입주자대표회장은 “경비 인원을 줄이는 것만이 효율적인 아파트 관리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주민과 경비원들이 서로 돕고 살면 그만큼 아파트 생활의 만족도 또한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글=전익진·임명수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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