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뺨치는 보험범죄 백태

중앙일보

입력 2014.12.29 14:24

#중소기업 사장 A씨는 직원 명의로 거액의 사망보험금이 나오는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보험금 수령자는 자신이었다. 얼마 뒤 그 직원은 살해된 채 발견됐다. 수사 결과 A씨가 직원을 물품창고로 불러 둔기로 뒤통수를 내리쳐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채업자 B씨는 돈이 없다며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를 불러내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었다. B씨는 잠이 든 채무자를 목졸라 살해한 뒤 사체를 바다에 던졌다. 빚 대신 채무자가 가입한 보험금 4억3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A씨와 B씨는 모두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보험금을 노린 사기 범죄가 갈수록 흉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해ㆍ살인과 같은 강력범죄 뿐 아니라 전문 브로커가 가담한 조직범죄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9일 보험사기로 수사 의뢰한 사건과 중요 판결 등 70건을 엄선해 ‘2014 보험범죄 형사판례집’을 발간했다. 보험사기 사건을 유형별로 정리해 관련 범죄의 조사(수사)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판례집은 전국 수사기관과 건강보험관리공단과 같은 유관기관, 보험회사에 배포된다.

보험금을 노린 범죄의 대상에는 가족도 있었다. C씨는 휴일에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거액의 사망금을 받는 보험 3개를 남편의 이름으로 가입했다. 얼마 뒤 C씨의 남편은 휴일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조사 결과 C씨가 내연남과 공모해 일부러 휴일에 남편을 불러낸 뒤 둔기로 때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편이 승용차를 타고 있는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가 난 것처럼 속였다. 법원은 C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영화 ‘하면 된다’처럼 일가족이 보험사기 조직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D씨는 자녀와 친인척 등과 함께 입원기간에 따라 보험금이 다르게 지급되는 보험상품 수십 개에 집중적으로 가입했다. 이후 30회에 걸쳐 638일 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처럼 속여 보험금 3억8300만원을 받아 챙기려다 적발됐다.

의료인·운수업ㆍ정비업자·보험설계사와 같은 보험에 관해 전문지식과 면허를 갖춘 자들이 사기범과 결탁하는 지능범죄도 늘었다. 변호사 사무장을 사칭한 E씨는 교통사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연기’를 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교통사고를 내고 사고를 당한 것처럼 속이기 위해 역할극이 필요했다. 그들이 보험금을 타내면 브로커 수수료는 별도로 챙겼다.

자동차 공업사 사장 F씨는 아예 광고지까지 만들어 돌렸다. 보험사기에 이용할 차량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멀쩡한 차를 교통사고로 파손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났다. 병원장ㆍ외과의사ㆍ원무부장 등 병원 전체가 공모해 환자 87명에 대한 건강보험 의료비를 타내고 민간보험사의 보험금 16억원을 타내기도 했다. 산업재해 보험사기 전문 브로커가 가담해 벌채 사업장에서 무릎을 몽둥이로 내리쳐 자해한 뒤 산업재해요양급여와 민영보험금을 청구한 사례도 있었다.

올 상반기 금감원과 보험사 등을 통해 적발된 보험사기범은 4만 명(보험금 2869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11% 늘었다. 매년 증가 추세다. 보험사기 금액은 매년 3조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영진 금감원 보험조사국 팀장은 “보험범죄는 강력범죄 발생률을 높이고, 보험사에 재정적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쳐 국민 전체에 큰 피해가 된다”며 “판례집이 보험사기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형사처벌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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