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친위대 국방위가 나서 "오바마는 원숭이" 비난

중앙일보

입력 2014.12.29 01:16

업데이트 2014.12.30 10:13

지면보기

종합 07면

휴가 간 오바마 하와이에서 휴가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가 26일(현지시간) 차를 타고 해변으로 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매년 성탄절 연휴를 하와이에서 보낸다. [카일루아 AP=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미국 영화 ‘인터뷰’ 파문에 북한 국방위원회가 직접 나섰다. ‘최고 존엄’(김정은 위원장을 지칭하는 용어)을 코미디 영화의 대상으로 삼는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소매를 걷어붙인 형국이다.

 북한 국방위 정책국은 27일 대변인 담화를 내고 “소니픽처스(영화 제작사)에 대한 해킹 공격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며 공동조사를 하자고 주장했다. 담화는 북한 선전매체 사이트가 불통된 데 대해 “미국이 인터넷 가동에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고도 지적했다.

상 주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7일 평양 중구역에 자리한 노동당 중앙위 회의실에서 북한군 수산 부문 모범일꾼 등을 표창하고 있다. 오른쪽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노동신문]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열대 수림 속에 서식하는 원숭이 상(相)”이라며 “제 놈에 대한 테러를 줄거리로 영화를 만들었거나 시해하는 테러를 부추기려 획책한다면 오바마가 환영할 수 있겠느냐”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국방위 정책국은 미국이 대북제재 방침을 밝히자 지난 5월에도 “아프리카 잰내비(원숭이의 방언)” “혈통이 분명치 않은 잡종” 등의 용어를 구사해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다. 당시 백악관은 케이틀린 헤이든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 성명을 통해 “추하고 무례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하와이에서 겨울휴가 중인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한 백악관 관리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미 의회전문지인 힐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모욕은 영화 ‘인터뷰’에 대한 평양의 가장 최근의 도발”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인종차별적 언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고 보도했다.

 북한 국방위는 1998년 9월 헌법 개정과 함께 사실상 북한의 최고권력기관이 됐다. 김정은이 맡고 있는 국방위 제1위원장은 ‘국가의 전반 사업을 지도하는’(북한 헌법 103조) 자리로 김정은이 후계자 자리를 굳힌 2009년 헌법 개정 때 힘이 실렸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8일 “외무성이나 유엔 대표부 차원에서 맞서기 어렵다고 판단되자 국방위가 투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평양의 권력 중심축을 향한 미국의 직접적인 공격으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다.

 정책국은 국방위의 핵심기관으로 지난 2월 남북 고위접촉 때도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카운터파트 삼아 당국 간 대화를 주도했다. 과거 노동당 통일전선부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나서던 걸 최근 들어 정책국이 챙긴 것이다. 현재 군부 대남통인 이선권 대좌(대령급)가 정책국장을 맡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영화 ‘인터뷰’를 둘러싼 바깥 기류가 심상치 않자 이번에 과녁을 워싱턴으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국은 담화에서 “반미성전은 정의와 평화의 수호”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의 친위기구 격인 국방위가 직접 나섰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선 해킹이 오히려 ‘인터뷰’의 인기몰이를 조장했다는 점이다. 국방위가 해킹 조직을 관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격이다. 대응 방식이 어설프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해킹 사건 초기인 지난 7일 “북을 지지하는 자들의 의로운 소행”이라고 주장하다가 국방위는 이번에 공동조사를 하자고 물러섰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공동조사는 4년 전 천안함 폭침 도발 때도 북한이 꺼냈던 낡은 카드”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파문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북한 손보기 여론이 확산되는 등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오바마를 인종차별적으로 모욕함에 따라 미국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북한 인터넷 27·28일에도 마비=지난 23일부터 불안정했던 북한의 인터넷망이 27일과 28일에도 대부분 마비됐다. 중국 신화통신은 27일 오후 7시30분부터 북한의 인터넷과 휴대전화 3G망이 끊겼으며 종일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평양발로 전했다. 중국에서는 28일에도 주 북한 중국대사관 홈페이지는 물론 북한의 대외 선전용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와 ‘유경’ ‘여명’ 사이트 등은 접속이 안 되고 있다. 이들 사이트는 서버가 중국 선양(瀋陽)과 단둥(丹東)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웹사이트는 접속이 가능한 상태다.

이영종 기자,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