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치유와 이야기가 공존하는 숲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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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여름의 한복판이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에어컨의 냉기 속에서 할아버지의 합죽선(合竹扇)을 떠올린다. 얇게 깎은 대나무 살에 종이를 발라 만든 날렵한 쥘부채는 백학의 날개 같은 깃을 촤르륵, 접었다가 다시 시원스레 펼치곤 했다. “紙與竹而相婚, 生基子曰靑風(대나무와 종이가 혼인하여 자식을 낳으니 바로 맑은 바람이더라).”

북한산 둘레길 우이령길. 숲길은 맨발로 걸어야 한다. 그래야 숲의 싱그러운 정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사진=김민규 기자

새하얀 깃에 적힌 글귀를 볼 때마다 외려 한여름의 새파란 대나무 숲이 생각났다. 푸른 장대비 모양이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며 하늘과 땅을 곧게 잇던 죽우(竹雨)의 풍경이 떠올랐다. 어디 대나무뿐 일까. 여름의 숲은 늘 서늘한 바람을 머금고 있다. 창공에서 내리쬐는 뙤약볕을 무성한 잎으로 굳건히 막아 내며 제 품 안으로 들어선 것들에게 아낌없이 시원한 그늘을 베풀어 준다. 천 년도 전에 만들어진 경남 함양의 인공 숲 상림(上林), 조선 왕가의 대들보가 되어 준 경북 울진 금강소 나무숲이며 전남 담양의 대숲은 이미 누천년 그렇게 더위에 지친 것들에게 위안의 자리를 내주었을 것이다.‘푸른 나무 그늘’, 다시 말해 ‘녹음(綠陰)’의 계절, 숲으로 갔다. 전국의 유서 깊은 숲, 산림치유 효과가 높다고 알려진 숲만 꼽아서 들어 갔다. 숲에서 서툰 이들을 힐링 프로그램으로 이끌어 주는 친절한 숲도 다녀왔다. 숲의 한가운데서 도시의 매연을, 에어컨 냉매제 냄새를 벗어던지고 피톤치드를 가슴 가득 들이켰다. 비로소, 숨통이 틔었다.

피톤치드 가득 치유의 편백 숲

숲이라고 다 같은 숲이 아니다. 더위도 식히고 산림치유 효과도 보려면 ‘피톤치드(Phytoncide)’ 발생량이 많은 편백 숲이 제격이다.

 피톤치드는 나쁜 균과 해충을 물리치려고 식물이 내뿜는 천연 살균제다. 인간이 들이마시면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장과 심폐 기능이 강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름은 나무가 가장 활발하게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계절이기도 하다.

 편백나무가 다른 나무에 비해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편백 숲은 최근 들어 산림치유의 메카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편백 숲은 죄다 전라남도에 있다. 장흥 우드랜드와 장성 축령산휴양림이다. 두 곳 모두 수령이 40년 넘는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삼나무와 어우러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있다.

숲에서는 숨 쉬는 것만으로도 쉼이 된다. 편백나무 우거진 전남 장흥 우드랜드의 풍욕장에서 체험객이 명상에 빠져 있다. 편백 숲은 인체에 유익한 천연 살균제 피톤치드의 보고다.

 억불산(518m) 자락에 있는 우드랜드는 고(故) 손석연(1918∼1997)씨가 1959~1964년 조성한 120만여㎡의 숲에 장흥군이 2006년 33만㎡ 규모로 만든 인공 휴양림이다.

 우드랜드 입구에서 입장료(어른 2000원, 어린이 500원)를 내고 아스팔트 깔린 오솔길을 따라 10분쯤 걸어 올라가면 금세 편백 향이 그윽한 숲으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억불산 정상까지 3.8㎞ 길에 데크 로드가 놓여 있다. 탐방로가 지그재그로 완만하게 이어져,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어렵지 않게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우드랜드가 2006년 개장과 함께 유명해진 건 ‘누드 숲’ 때문이었다. 억불산 중 턱에 있는 ‘비비에코토피아’ 얘기다. 엄밀히 말해 발가벗는 건 아니고 속옷 위에 종이로 만든 불투명한 옷을 걸치고 풍욕(風浴)을 한다. 우드랜드 입장료와 별도로 3000원을 내면 종이옷을 한 벌씩 준다. 종이옷을 입고 풍욕장 안으로 들어가 곳곳에 놓인 벤치나 오두막, 낙엽이 쌓인 바위에 앉거나 누워 있다가 오는 게 여기에서의 산림치유 방법이다. 뭐, 대단한 게 있을까 싶지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숲의 기운이 몸으로 파고드는 게 느껴진다.

 우드랜드에는 여러 치유 시설이 갖춰져 있다. 편백나무 톱밥을 이용한 산책로를 맨발로 걷거나 천일염으로 만든 편백 소금집에서 찜질을 할 수도 있다. 황토·통나무 등으로 지은 생태 가옥에 숙박하려면 묵을 날로부터 2개월 전에 홈페이지(jhwoodland.co.kr)에 예약을 해야한다. 우드랜드 매표소는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6시에 마감한다.

 우드랜드에서 북서쪽으로 100㎞쯤 떨어진 장성의 축령산휴양림은 노령산맥의 수려한 산세에 폭 묻혀 있다. 축령산(621m)이 널리 알려진 건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 덕분일 터이다. 영화 촬영지로 인기를 끌면서 산기슭에 ‘금곡영화마을’이 들어섰고, ‘태백산맥’ 이후로도 ‘내 마음의 풍금’, ‘만남의 광장’ 같은 영화에서 축령산 일대는 질박한 산골 마을로 곧잘 등장했다.

축 령산의 편백 숲도 고(故) 임종국(1915∼1987) 선생이 20년 넘게 홀로 가꾼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역사에 유린당한 민둥산에 임씨는 1957년부터 나무를 심어 숲을 일궜다. 가뭄이 들면 물지게로 물을 떠다 뿌리면서 공을 들인 끝에 민둥산은 편백나무·삼나무 300여만 그루가 우거진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했다. 그 규모가 무려 596만㎡에 이른다. 서부지방산림관리청이 일대 산림을 매입해 지금은 나라가 관리하는 숲이 되었다.

 2010년 삼림청이 치유의 숲을 조성한 뒤로 장성 편백 숲은 한결 찾는 이가 많아졌다. 산림청이 닦은 치유 숲길은 축령산 정상을 거치는 건강 숲길(2.9㎞)을 비롯해 모두 네 코스 9.7㎞에 이른다. 일부 구간은 임도(8.5㎞)로 연결돼 있다. 축령산 사방에 자리한 금곡마을·문암마을·추암마을에서 숲길로 들어서는 길이 각각 따로 마련되어 있다.

 장성의 편백 숲은 언제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입장료도 없다. 다만, 차량은 엄격히 통제한다. 각 마을 주차장에서 편백 숲길까지 걸어서 30~40분 걸린다. 일반인, 학교 폭력 및 인터넷 중독, 아토피, 암환자 대상으로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홈페이지(cafe.daum.net/mom-mamhealing)나 전화(061-393-1777)로 예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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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가득 누천년 세월 쌓인 숲

거기에 깃든 이야기를 알아야 더 풍성히 누릴 수 있는 숲도 있다. 그 유래가 수백년, 아니 누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숲들이다. 그런 숲에서는 좁은 오솔길을 걷는 행위조차 오랜 역사를 되새기는 일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은 경남 함양에 있는 상림이다. 함양읍 서쪽 위천 강가에 있는 18만여㎡ 면적의 숲인데, 통일신라 말기 진성여왕(?~897) 때 함양 태수로 있던 최치원(857~?) 선생이 마을의 홍수 피해를 막고자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러니까 숲의 나이가 1100년은 족히 되는 셈이다.

 상림 입구에서 잘 닦은 흙길(1.6㎞)로 접어들면, 갈참나무·졸참나무·때죽나무·사람주나무 등이 왁자하게 가지를 맞대고 있다.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야생 왕머루, 칡 등이 제멋대로 얽혀 있어 깊은 계곡에 들어선 느낌도 준다. 지금 상림에서 자라는 식물은 120여종이 된다. 상림 공원은 상시 개방하고 입장료도 없지만, 천연기념물인 만큼 음식물을 갖고 들어가거나, 풀이나 나무를 꺾으면 안 된다. 천 년 묵은 숲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조건 치고는 너그러운 조건이다.

 경북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은 수백 년 숲의 역사가 소나무 나이테에 그대로 남아 있는 숲이다. 조선시대 숙종 6년(1680) 왕실이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황장목이 있는 산으로 소광리 숲을 지정하면서 일반인의 벌채를 금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적어도 300년 이상 나라가 직접 관리를 한 숲이라는 얘기다.

 애초 ‘금강송(金剛松)’이라는 이름은 지역적으로 금강산에서 경북 영덕까지, 태백산맥 자락에 자라는 소나무를 가리켰다고 한다. 그러나 강원도 강릉·삼척, 경북 봉화 일대의 금강송은 일제강점기에 무차별로 벌목을 당해 크게 훼손됐다. 울진 소광리만 무사했던 건 일본의 손이 못 미칠 만큼 오지였기 때문이다. 1982년 산림청은 이 일대를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했다.

 30년간 굳게 닫혀 있던 금강송 숲은 2010년 산림청이 ‘금강소나무숲길’이란 탐방로를 내면서 비로소 일반인에게도 허락된 숲이 되었다. 길은 모두 3개 구간을 조성했지만, 현재 1구간과 3구간 약 30㎞만 개방돼 있다. 금강송 군락지를 지나가는 건 3구간(왕복 16.3㎞)이다. 소광천 계곡을 곁에 두고 걷노라면 이내 수직으로 솟은 붉은 숲을 만난다. 수백 년 세월 동안 봉인됐던 숲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전남 담양에서 가장 대표적인 대숲은 담양군이 운영하는 죽녹원이다. [중앙포토]

 금강소나무숲길을 탐방하려면 홈페이지(uljintrail.or.kr)에서 예약해야 한다. 하루 80명 한정, 화요일에는 탐방 프로그램이 쉰다. 동네 주민으로 구성된 숲 해설자와 전 구간을 동행해야 한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전남 담양의 대나무 숲은 태초부터 그 곳에 있던 숲이다. 위도 35도에 자리한 담양은 연평균 강수량 1000~1200㎜, 연 평균 기온 10~12도로 대나무가 자라는데 천혜의 환경을 갖춘 곳이다. 전국 대나무 서식지의 25%를 차지한 지역이 바로 담양이다.

 담양의 가장 대표적인 대나무 공원은 ‘죽녹원(竹綠苑)’이다. 원래 개인 소유이던 대나무 숲을 2005년 담양군이 사들이면서 누구나 죽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2.4㎞ 길이의 산책로를 조성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왕대·분죽·신우대 등 토종과 맹종죽 등 중국·일본산 대나무가 즐비하다.

 죽녹원 말고도 담양에는 곳곳에 죽(竹)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배우 한석규의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란 카피로 유명한 이동통신사 CF를 촬영한 대전면 해성리의 개인 소유 대숲은 700m 남짓한 샛길의 호젓한 분위기가 그만이다.

힐링이 가득 병원·학교 같은 숲

일에만 매달려 있다가 오랜만에 숲에 가면 막상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그럴 때는 숲에서 운영하는 힐링 프로그램을 확인하는 게 방법이다.

숲이 그저 숲만이 아니라, 병원도 되고 학교도 된다는 걸 우리나라에서 처음 알린 곳은 강원도 횡성 숲체원이다. 말하자면, 숲 힐링 프로그램의 ‘원조’ 격이다.

 숲체원은 태기산(1261m)과 청태산(1200m) 자락이 어울리는 해발 850m 높이에 자리해 있다. 2007년 9월 산림청 녹색자금을 들여 시설을 지었고, 지금은 한국녹색문화재단이 운영을 맡고 있다. 숲 체험을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만 무려 3년, 195억원을 투자했다. 그만큼 독보적이다. 아토피·당뇨 등 질환뿐 아니라 게임·알코올·도박 등 각종 중독, 가출·학교폭력 등 학교 부적응 등을 치료하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두루 갖추고 있다. 숲체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만 80개가 넘는다. 주로 학교·기업·병원 등 단체가 하루 이상 묵으며 이용하고 있다. 별도 입장료는 없다. 개별 여행객이라면 숲체원 안에 있는 청태산 숲치유센터를 권한다. 15명 이내 인원이 미리 전화(033-345-4451)로 예약하면 산림청이 운영하는 당일 프로그램(3시간, 6시간)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경기도 양평 산음자연휴양림에서 햇살을 받은 나뭇잎이 연둣빛 파도마냥 바람결 따라 일렁인다.

 경기도 양평 산음자연휴양림은 산림청이 운영하는 전국 네 개 치유의 숲 중에서 제일 먼저 생긴 치유의 숲이다. 2008년 국내 최초로 치유 숲길(1.5㎞)을 열었고, 이듬해인 2009년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휴양림 내 숙박 시설이나 텐트에서 묵으며 참가하는 1박 2일이나 2박 3일 체험 코스도 있지만, 숲 치유 전문 요인이 3시간 동안 동행하는 당일 체험 코스도 있다.

 숲 체험은 숲길 산책과 다르다. 맨발로 숲을 걷도록 유도하는 것부터 독특하다. 잣나무 숲에 드러누워 경혈체조·단전호흡을 하노라면 숲을 통째로 들이마시는 기분마저 든다.

 산음자연휴양림의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산행 전후 건강 지수를 점검한다. 스트레스 정도, 자율신경 균형도, 심박수 등을 측정해 숲 치유 효과를 수치로 가늠 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20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당일 코스는 입장료(어른 1000원, 어린이 300원)만 내면 참가할 수 있다. 휴양림은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6시 닫는다. 숲에서 생활 습관까지 고치고 싶다면 강원도 홍천의 힐리언스 선마을을 추천 한다. 자연의학 연구 20년 외길을 걸은 이시형(79) 박사가 촌장을 맡아, 숙박 시설부터 힐링 프로그램까지 모든 걸 고안해 운영하는 시설이다.

 선마을에서는 날마다 다른 내용의 체험 일정표가 나온다. 전문가와 함께하는 숲 명상, 요가 등 시간대별로 프로그램이 다채롭다. 원하는 걸 골라 자유롭게 참여하면 된다. 대신 규율은 엄격한 편이다. 선마을이 제공하지 않는 음식을 먹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특히 삼
가야 한다.

 힐리언스 선마을의 프로그램 참가비에는 숙박과 체험, 식사, 황토방·스파 등 부대시설 이용이 전부 포함돼 있다. ‘쉼’부터 ‘암 환우 캠프’까지 1박 이상 묵는 패키지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지만, 매주 일~목요일 오전 10시에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나는 당일 코스도 있다. 당일 체험 어른 5만9000원, 어린이 4만3000원. 일정·테마별로 세분화돼 있어 홈페이지(healience.com)를 잘 살펴봐야 한다. 유유자적하게 숲에 젖어 들고 싶다면충북 제천 리솜포레스트 만한 곳도 없다. 리솜포레스트는 2010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힐링 리조트다. 주론산(903m) 산세를 그대로 살려 리조트 시설이 들어앉아 있다. 21만여㎡ 리조트 부지 중에서 70%가 숲이다. 수백 년 된 침엽수림 곳곳에 독립형 빌라가 들어서 있고, 빌라 사이로 좁고 넓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산책로는 20분 정도만 걸어도 되는 부담 없는 코스부터 주론산 정상을 오르는 코스까지 세 가지 코스가 마련돼 있다.

 매일 오전 9시30분, 오후 3시30분 전문 힐리스트와 함께 숲길을 체험하는 에코힐링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오후 8시 부터는 밤하늘의 별을 쫓아 숲을 도는 별빛 투어도 진행한다. 에코힐링 프로그램은 투숙객만 가능하다. 체크인 센터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02-5989-114.

나원정 기자 wj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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