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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권력의 평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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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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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전 재무장관은 침울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 간판이다. 지난 19일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2년째다. 김용환의 지금 심경은 무얼까. 그는 침묵으로 대신했다. 표정도 감추려 했다. 그 속에 개탄과 적막의 기색이 엿보인다.

 김용환의 그날이 기억났다. 2012년 그 하루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길었다. 그는 종일 마음을 졸였다. 오후엔 패배 예측이 퍼졌다. 밤 8시50분 승리가 확실해졌다. 그는 박근혜 당선자 주변에 전화를 걸었다. “경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당부처럼 됐다.

 그에게 ‘정윤회 문건 파문’을 물었다. 그는 “정권 내부에 인물이 안 보인다. 권력도 격(格)이 있는데 왜 이 지경이 됐는지”라고 했다. 박근혜 시대 풍경은 그의 기대와 다르다. 김용환의 탄식은 깊다. 그는 친박 원로그룹의 좌장이다.

 정권 밑천의 단면이 드러났다. 정권의 자산은 평판과 역량으로 짜인다. 그 요소는 용인술, 위기관리, 어젠다 , 소통과 언어다. 문건 파문은 인사 의혹이다. 비선과 문고리 3인방 논란은 인사 공간을 흔들었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발언은 묵직한 폭로다. 그는 “대통령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과의 직접 통화가 한 번도 없다”(방송기자클럽 토론회)고 했다. 국회의장의 그런 식 비판은 이례적이다. 친박 의원 다수도 정 의장 발언에 동조한다. 그것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위로다. 국정 어젠다는 쏟아진다. 그 대표가 규제 혁파다. 그 과제는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다.

 평판은 리더십의 자산이다. 그것은 국정 영향력을 확장, 재생산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평판(reputazione)을 중시했다. “정치적 권위의 핵심 요소”(군주론)로 쳤다. 그 단언은 언제나 유효하다. 평판은 최종 진실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유능한 권력은 선제적이다. 나쁜 이미지, 어두운 평판의 소재를 신속히 제거한다.

 밑천이 드러나면 정권은 힘들어진다. 그 순간 권력은 얕잡아 보인다. 마키아벨리가 가장 경계했던 상황이다. 그 속에서 정책 추진력은 떨어진다. 공무원 사회는 딴전을 피운다. 민심 장악력은 약화된다.

 박 대통령은 각오를 새로 다졌다. “끊임없이 어려움에 직면해온 것이 우리의 팔자다. 30년 번영의 기초를 닦을 것”이라고 했다. 22일 경제구조 개혁회의에서다. ‘팔자’ 언급은 절박함을 담아낸다. 국정 추진력이 재정비돼야 한다. 정권의 부족한 밑천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김용환의 충정은 거기에 꽂혀 있다.

 재정비의 시작은 사람 쓰기와 장점 살리기다. 박정희의 사람 욕심은 유별났다. 한강의 기적은 인재 발탁으로 가능했다. 인사는 충성과 소명감을 강화한다. 박근혜 용인술은 소극적이다. 폭은 좁다. 그것은 10·26 후 배신의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권력은 그런 어두움만 있지 않다. 권력 운용의 묘미는 인물 발굴이다. 사람 쓰기는 평판의 핵심 요소다. 인사의 새 방식은 평판을 새롭게 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제 성공 모델이다. 그는 초저녁 백악관에서 칵테일 시간을 즐겼다. 권력의 저녁 메뉴는 말벗이다. 그는 여러 사람들을 불렀다. 난상 토론이 벌어진다. 루스벨트는 그들의 능력과 성향을 점검했다. 그 장면은 청와대 모습과 다르다. 박 대통령의 저녁은 보고서 확인이다. 대면(對面)은 거리가 멀다.

 박 대통령의 장점과 기량은 잊혀졌다. 장점은 대중 동원력이다. 그 동원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드라마에 있는 인물만의 독점적 기량이다. 3김과 노무현 시대 이후 박 대통령이 유일하다.

 박 대통령은 계약직 보호를 다짐한다. 이른바 ‘장그래법’이다. 그것은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이다. 저항은 거세다. 기존 정규직의 양보 없이는 어렵다. 국회 문턱은 높다. 선진화법은 장애물이다. 새누리당은 허약하다. 개혁은 민심을 업어야 한다. 일자리 전쟁터의 울분과 애환은 국정 추동력이다. 그런 여론을 집결시켜야 한다. 그것으로 기득권 세력을 설득, 압박해야 한다. 대중 동원력으로 국회를 역(逆)포위할 수 있다. 그 기량이 발휘돼야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장기는 소통이다. 그의 어젠다는 국민을 결집시켰다. ‘위대한 미국’이다. 그것은 국정 언어의 승리다. 박정희 시대의 ‘잘살아 보세’가 있다. 그런 언어는 대중의 상상력을 분출시킨다. 그것은 통합의 평판을 만든다. 박근혜 정권 참모들은 그런 분야에 둔감하다.

 박근혜 드라마에 비장미(悲壯美)가 있다. 그것은 원칙과 진정성을 돋보이게 한다. 그 매력은 다시 발산돼야 한다. 문고리 논란은 그것을 막았다. 박근혜 지지자들은 안타까워한다. 그들은 2년 전에 가슴을 졸였다. 그 심경은 아직 살아 있다. 그들은 박 대통령의 쇄신 장면을 기다린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