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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세상읽기

북한도 쿠바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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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강일구]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1990년대 말 미국 의회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청중 중에는 쿠바계 언론인이 많았다. 그중 많은 이가 발표가 끝난 뒤 미국의 대북 제재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내게 쏟아냈다. 쿠바가 미국의 대북 정책을 유심히 살펴왔다는 것은 확실하다. 평양 또한 미국·쿠바 관계 정상화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깜짝 발표를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쿠바 사례는 미국의 대북 정책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일까.

 놀라운 발표였다. 특히 백악관이 쿠바 정책의 변화는 없다고 수차례 공언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하지만 막후에서 미 행정부는 지난 18개월 동안 진로 수정을 준비했다. 6개월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쿠바 협상의 보증인으로 나섰다.

 다음달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 관련된 여행·무역·금융 분야 제한을 풀 것이다. 국무부는 쿠바를 테러후원국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문제를 검토할 계획이다. 미국 대통령의 행정집행권만으로도 가능한 조치들이다. 미 행정부는 완전한 국교정상화 의지를 명백히 하고 있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대사관이 다시 열릴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를 따돌리고 국교정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큰 논란을 불러온 엄청난 변화다.

 민주당·공화당 양쪽에서 대통령의 의지를 꺾겠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쿠바계 미국인으로 민주당 소속인 로버트 메넨데스 연방 상원 외교위원장에 따르면 오바마의 결정은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쿠바를 개혁·개방으로 이끌 것이라는 잘못된 희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역시 쿠바계 미국인이며 공화당 대선후보군에 속하는 마코 앤토니오 루비오 연방 상원의원은 쿠바 주재 미국대사의 인준을 저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오바마의 새로운 쿠바 정책은 단지 정치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국민은 쿠바 문제로 분열돼 있다. 카스트로 정권의 폭압성에 대해 많은 쿠바계 미국인이 깊은 혐오감을 갖고 있다. 인권운동가들의 신념은, 미국이 쿠바에 개방적인 정책을 펴야 할 때라는 신념보다 농도가 더 짙다.

 이런 상황을 북한 문제에도 대입할 수 있을까.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과정은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 북한이 오판할 수도 있다. 미국·쿠바 협상은 5년간 쿠바 교도소에서 복역한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석방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기가 됐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다른 고위 관료들은 국교정상화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동일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근거는 아무 데도 없다. 하지만 미국·쿠바 국교정상화에 비판적인 일부 인사는 북한 같은 나라들이 ‘미국인을 인질로 잡으면 제재 철회와 국교 수립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른 중대한 차이가 있다. 라울 카스트로는 피델 카스트로와 달리 반미주의 발언 수위를 낮췄다. 카스트로와 달리 김정은은 오히려 반미주의 어법을 더욱 강렬하게 구사해 왔다. 워싱턴으로 핵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했다. 최근에는 소니픽처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미국인들의 감정은 더욱 악화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젊은 미국인들의 쿠바관은 호전됐다. 캐나다나 유럽 친구들(미 국무부 규정을 무시한 미국인들)이 쿠바를 방문하고 나서 들려주는 저렴한 여행비와 뜨거운 해변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쿠바가 미국과 서반구의 동맹국들에 더 이상 군사적인 위협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미국과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들에 점점 더 위협이 되고 있다.

 요컨대 북한은 쿠바보다 전략적으로,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훨씬 까다로운 상대다. 쿠바의 경우만 해도 간단하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새로운 쿠바 정책을 추진한 것에 의회가 어떻게 반격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오바마는 쿠바에 여러 가지 양보를 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하도급업체 직원이던 그로스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범법행위를 한 쿠바 스파이 4명을 풀어 줬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쿠바로부터 얻어 낸 것은 없다. 쿠바의 인권 상황은 심각하다. 미국과 관계를 개선한 미얀마 정부의 경우에는 수백 명의 정치범을 석방했다.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카스트로가 미얀마 같은 개혁을 할 것이란 징후는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좌파·우파 모두 오바마 대통령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배경상의 차이를 근거로 미국과 북한 사이에 외교적인 깜짝 쇼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임기 말 미국 대통령들이 업적을 남기기 위해 의회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는 있다. 임기의 마지막 2년 기간에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는 북한에 큰 양보를 했다. 게다가 오바마는 ‘아무런 조건 없이 독재자들과 만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북한에 대해 급격한 정책 수정이 이뤄진다면 북한 문제는 2016년 미국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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