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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 낮은 기업 50~100곳에 확대 요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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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내 증시의 가장 큰손인 국민연금이 내년부터 투자 기업에 배당 확대를 본격적으로 요구한다. 지금까지의 선언적 요구와는 달리 구체적인 기준과 명단을 만들어 기업을 직접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배당 확대를 통해 가계소득을 늘려 내수 소비를 살리겠다는 취지다. 기획재정부는 23일 발표한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이런 내용의 경제활력 제고 방안을 공개했다. 이번에 마련된 안은 내년 2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확정된 뒤 곧바로 적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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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내년부터 지분을 3~5% 이상 가지고 있는 기업 가운데 업종 평균보다 배당 성향이 낮은 기업 50~100개를 과소배당 기업으로 분류해 비공개로 배당 확대를 요청한다. 1년 뒤 배당을 늘리지 않을 경우 중점 감시기업으로 지정해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래도 배당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주식을 팔아버린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주식 매도가 주가에 큰 악재이기 때문에 대다수 기업이 배당을 늘릴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은 이미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과 잇따라 접촉해 배당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9일 한국거래소의 배당확대설 조회 공시 요구에 “특별배당금 성격으로 지난해 대비 30∼50%의 배당 증대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 지분 7.81%를 보유한 국민연금 배당금은 예상(1700억원가량)보다 크게 늘어난 2500억원가량이 될 거라는 게 증권사들의 분석이다. 배당을 늘린 기업에는 투자를 더 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은 기금 투자 유형에 배당주형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국민연금으로부터 자금을 위탁받은 자산운용사들의 배당주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서다.

 기재부가 배당 확대 카드를 꺼낸 이유는 선진국에 비해 적은 국내 기업의 배당을 높여야 내수에 돈이 돌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한국 기업의 지난해 말 평균 배당 성향은 21.1%로 미국(34.6%)·독일(43.3%)·일본(30.1%)보다 훨씬 낮다. 이형일 기재부 종합정책과장은 “배당을 선진국 수준으로 늘릴 경우 증시 활성화와 가계소득 증대라는 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당 매력이 높아진 한국 증시에 자금이 몰리면 해당 주식을 보유한 소액 투자자가 배당소득은 물론 매도 차익을 낼 가능성이 커진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높아져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출 수 있다.

 최저임금 단계적 인상안 역시 내수 살리기 차원에서 이번 대책에 포함됐다. 디플레이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지갑을 채워 소비를 늘리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런 기조에서 2016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내년(7.1%)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 기준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규제도 강화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시정 기간을 주지 않고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최저임금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 임금을 인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업종별 생산성 증가 지표를 마련해 내년 하반기 중 임단협 지도 방향에 반영하기로 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임금 체불에도 철퇴를 가한다. 임금 체불은 매년 1조원을 넘어서는데, 올 들어선 지난달 이미 1조2065억원에 달한다. 이를 막기 위해 앞으로는 임금 체불 사업주에게는 법원 판결 체불금 말고도 같은 금액의 부가금을 지급하도록 할 계획이다. 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해서는 공공기관 발주공사 입찰 때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최경환 경제팀이 내수 부양을 위해 내놓은 대표 정책인 가계소득 증대 세제 3대 패키지(기업소득환류세·근로소득증대세·배당소득증대세)도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한다. 특히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경우 주주 배당과 같은 효과로 인정해 없앤 주식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업소득환류세 부과 대상에서 빼주기로 했다.

강병철 기자,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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