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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지갑 못 열면 마음이라도 열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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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방 갔다가 새벽에 올라왔다. 칼바람이 매섭다. 벌벌 떨며 아파트로 들어서다가 경비실을 들여다봤다. 불이 훤히 켜 있는 좁은 공간에 경비 아저씨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자고 있다. 살금살금 아파트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나를 쳐다본다.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한다.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공연스레 피곤한 아저씨를 깨웠나 보다.

 두 달 전이던가.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의 모욕과 폭언을 견디다 못해 분신했는데 결국 사망했다. 그런데 엊그제 바로 그 아파트 경비원 전원이 해고 위기까지 갔다가 다행히 해결됐다고 한다. 처음엔 용역업체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이유는 ‘고령의 경비원이 많은 데다 인근 백화점과 상가 이용자들이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을 묵인하고 대신 주차비를 받는다는 불만도 있고 구조적인 문제도 많아서’라고 했다.

 그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가 있다. 사건 직후 그 친구는 많이 서운해했었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데…. 김치전이며 과일이며 갖다 드리고 인사도 열심히 하고. 입주민 중에는 잘하는 사람이 더 많아. 그런데도 그런 얘긴 쏙 빼고 말야….’ 피켓 들고 시위하는 경비 아저씨를 보니 배신감까지 들더란다.

 베란다에서 음식을 던지며 “경비, 이거 먹어” 했다는 진상 할머니, 경비 폭행한 입주민, 그런 사람은 어디든 있다.

 ‘짜증 내지 말고 힘들면 일 그만두셨으면…. 이제는 경비 아저씨 눈치 보는 세상…’이라고 SNS에 올렸던 황보는 비난을 받고 곧바로 사과했는데.

 어려 보인다고 반말 툭툭 던지고, 짜증 내며 눈치 주고, 외부인 주차 눈감아 주며 뒷돈 챙기는 경비원. 그런 사람도 어디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짜증 내고 폭력 쓰고 뒷돈 챙기고 진상을 부릴 게다. 몇 가지 예를 보고는 싸잡아 일반화 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내년부터 최저임금 100% 적용을 의무화하게 되면 가구당 한 달에 3000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단다. ‘별다방 콩다방’ 커피 반 잔 값 아낀다고 경비원을 대량 해고시키면 입주민들만 생고생할 거다. 커피 한 잔 줄이고 편하게 살고, 돈 더 받은 만큼 열심히 일하고. 상생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밥줄을 손에 쥔 입주민은 갑이고, 입주민 수만큼의 사장을 모시는(?) 경비원은 을이다. 경비원도 하루에 3~4시간 잘 권리는 있다고 하던데 밤에는 그들도 불 끄고 편히 잤으면 좋겠다. 연말이다. 지갑을 못 열면 마음이라도 열며 지내자.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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