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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뒷골목에서 바라본 금연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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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정헌
이정헌 기자 중앙일보 도쿄특파원
이정헌
도쿄 특파원

며칠 전 미국에 사는 친구가 서울을 들러 도쿄를 찾았다. 길을 걷던 중 갑자기 으슥한 뒷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 대만 피우고 가자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10년 전 어렵게 금연에 성공한 친구다. 미국에선 공공장소 흡연이 불가능해 담배를 끊었다고 했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흡연 공간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에 출장을 오면 이상하게 담배 생각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주변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어서다. 뒷골목 흡연은 대로변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 서울 친구들에게 배운 거라고 했다.

 일본은 흡연자의 천국이다. 5개월 전 도쿄 특파원으로 갓 부임했을 때다. 아이들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 흡연석과 금연석,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금연석을 택한 뒤 자리에 앉다 깜짝 놀랐다. 환풍기나 칸막이도 없는 흡연석이 금연석 바로 옆에 있었다. 담배 연기를 고스란히 들이마셔야 했다.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부부가 흡연석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10분도 안 돼 식당을 빠져 나왔지만 온몸에 담배연기가 스며든 뒤였다. 금연석이 있는 식당은 그나마 나은 곳이란 걸 얼마 뒤에 알게 됐다. 유명 백화점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식당과 커피숍에서 흡연이 허용된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면 손님이 뚝 끊기기 때문이란다. 비흡연자의 담배 연기를 피할 권리 못지않게 흡연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 역시 깔려 있다.

 그렇다고 일본 내 모든 공공장소, 어디에서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건 아니다. 길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건 단속 대상이다. 건물 벽과 보도블록엔 금연 표지판이 붙어 있다. ‘길거리에서의 흡연 금지’란 한국어 경고문도 적혀 있다. 자치단체별로 많게는 2만 엔(약 18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한다. 어른들이 무심코 손에 들고 가던 담뱃불에 키 작은 아이들이 실명하거나 화상을 입는 사고가 잇따른 데 따른 조치다. 대신 길거리와 지하철 역사, 광장, 대학 캠퍼스 등 공공장소에는 흡연부스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음료수 자판기가 있고 환기도 잘돼 쾌적하다.

 최근 한국에선 흡연자들의 볼멘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새해 1월 1일부터 면적에 관계없이 모든 음식점에서 금연이 의무화된다. 당구장과 스크린골프장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커피전문점의 흡연좌석 운영이 금지되면서 관련 업계는 대책마련에 고민이 깊다. 버스정류장과 공원, 광장, 대로변에서 쫓겨난 흡연자들은 갈 곳이 없다며 하소연이다. 담뱃값 2000원 인상 소식에 금연클리닉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금연은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처럼 보인다. 세계 최대 흡연국인 중국도 ‘공공장소 흡연규제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중국 내 모든 공공장소에서 이르면 내년부터 실내흡연이 금지된다. 나라 안팎에서 금연구역이 확대되는 건 비흡연자로서 반가운 일이다. 다만 흡연자들이 죄인 취급을 받으며 음침하고 더러운 뒷골목으로 내몰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깨끗하고 쾌적한 흡연공간도 분명 필요하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