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17일 통영함 납품 비리와 관련해 황기철(사진) 해군 참모총장의 업무 태만을 지적하는 감사자료를 “인사자료로 활용하라”며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넘겼다. 사실상 인사조치 요구다. 2008~2010년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을 지낸 황 총장에게 통영함과 소해함의 납품 관련 업무 책임을 물었다.
감사원이 발표한 ‘방산제도 운용 및 관리실태’에 따르면 황 총장의 책임은 두 가지다. 방사청은 2008년 9월부터 700억원의 예산을 들여 해군의 차기 수색구조함인 통영함과 기뢰제거함인 소해함의 음파탐지기 구매를 추진했다. 음파탐지기는 구조 대상 함정이나 제거 대상 장애물을 탐지하는 눈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방사청은 통영함에 당초 합동참모본부가 요구한 정확도가 높은 최신형 ‘멀티빔’ 형태가 아닌, 1970년대 이전에 주로 사용했던 ‘단일빔’ 형태를 반영하도록 납품 희망업체들에 요청했다. 당시 방사청 상륙함사업팀장인 A대령이 예비역 대령인 브로커 B씨로부터 미국 헤켄코사가 공급하는 음파탐지기(단일빔 형태)를 구매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멀티빔 제조사들은 입찰에 불참하고, 헤켄코사가 입찰에 참여해 제안서 평가 대상업체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황 총장은 합참이 요구한 작전요구성능(ROC)과 다른 제안서(단일빔 형태)를 방사청 실무자가 올렸는데도 결재를 했다는 걸 감사원은 문제 삼고 있다.
또 다른 책임은 헤켄코사가 계약에 필요한 성능평가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고도 그대로 납품을 진행시켰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지난 9월 서울 모처에서 황 총장을 4시간 동안 강도 높게 조사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황 총장은 ‘전문적·기술적인 분야는 잘 모른다’고 하고, 일부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해군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배 만드는 작업에 관여했다”며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으면 추가 절차를 진행하지 않도록 하는 게 맞는데 진행시켰으니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명백한 범죄혐의나 고의성이 있었다고 보긴 어렵고, 공무원 징계시효(3년)가 지난 점을 고려해 인사자료로 활용하라고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사자료로 활용하라는 감사원 통보가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다.
국방부 당국자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인사와 관련된 부분은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황 총장에 대한 경질이나 경고 등의 인사조치는 고려치 않고 있다는 얘기가 국방부에선 나오고 있다.
방위사업청의 음파탐지기 구매 과정은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전방위적인 방산 비리 수사, 감사의 도화선이 됐다. 성능 미달 제품을 구매하는 바람에 1590억원을 들여 국내 기술로 2012년 9월 진수한 통영함(3500t)의 전력화가 지연됐고, 통영함은 지난 4월 세월호 사고 때도 투입되지 못했다.
천권필·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