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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대상 ‘소프트 타겟’으로 이동

중앙일보

입력

테러의 대상이 점점 정부 또는 공공기관 등에서 민간으로, 민간인 중에서도 어린이나 여성 등 약한 계층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른바 ‘소프트 타켓(soft target)’ 테러다. 정부기관이나 공공 기관을 목표로 삼는 기존의 ‘하드 타깃(hard target)’ 테러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16일 141명의 희생자를 낸 파키스탄 탈레반 반군 테러와 전날 발생한 호주 시드니 도심의 카페 테러가 모두 그랬다.

파키스탄 테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테러 중에서도 노골적으로 어린 학생들이 모여있는 학교를 공격 목표로 삼았다는 데서 더욱 큰 충격이다. 괴한들은 책상과 의자 밑에 숨어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 총격을 가했다. 생존 학생인 샤쿠르 칸(16)은 “군화를 신은 한 남성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계속 총을 쐈다”며 “나는 눈을 감고 누워서 죽기만을 기다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도 파키스탄 탈레반의 목표였다. 말랄라는 2012년 탈레반의 총에 머리를 맞았으나 극적으로 살아났다.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은 지난 4월 수업 중이던 공립학교 여학생 276명을 납치했다. 대부분 학생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뒤 보코하람 대원들과 강제 결혼시켰다. 체첸 분리주의자들이 지난 2004년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자치공화국의 한 초등학교에 난입해 어린이 186명의 목숨을 앗아간 '베슬란 인질사건'은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최악의 참사로 남아있다.

이들이 학교를 노리는 이유는 탈레반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서구식 교육, 특히 여성 교육에 반대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이 근본 이유는 아니다. 예컨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파키스탄 탈레반의 학교 테러를 “어린이와 여성을 공격하는 것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며 강력 비난했다. ‘서구식 교육’을 서구식 문화의 상징으로 간주해 목표로 삼는 테러집단은 보코하람 정도다. 보코하람의 뜻 자체가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다.

그보다는 소프트 타겟이 하드 타겟에 비해 반격의 위험성이 적어 테러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고,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만큼 대중들의 공포심리가 극대화돼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과 어린이가 피해를 입으면 전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쉽다. 어린 학생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있는 학교는 테러리스트들의 가장 손쉬운 목표다. 아울러 테러단체들의 조직적 범행에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의 ‘일상 골목 테러’까지 가세함으로써 테러 목표가 갈수록 ‘소프트 타겟’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일어난 인질극은 여성들이 주로 찾는 초콜렛 카페를 목표로 삼았다. 분리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위구르족도 경찰서나 관공서를 공격하던 과거 방식에서 베이징 톈안먼 광장으로 차량을 돌진하거나 철도역에서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두르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파키스탄의 또 다른 이슬람 무장단체 ‘탄지물 이슬라미울 푸르칸’은 여성을 상대로 하는 산성액 테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상점에서 나오는 여성들에게 다가가 산성 용액을 뿌려 얼굴에 화상을 입히는 식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해에만 100여명의 여성이 이와 같은 산성액 테러를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11년 6월 소말리아에서 사살된 알카에다의 동아프리카 작전 담당 파줄 압둘라 모하메드가 남긴 문서는 전세계 대테러기관들의 주목을 끌었다. 문서에는 “우리의 목적은 작전 비용을 적게 들여 지배층과 유대인 커뮤니티에 강한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런던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노린 테러 대상에는 이튼 칼리지가 포함돼 있었다. CNN은 이를 두고 “테러집단의 공격 대상이 소프트 타겟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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