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왕비 이미지 벗고 싶어요"

중앙일보

입력 2005.09.01 06:10

업데이트 2005.09.01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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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 연습실'. 입구에 들어 서자 귓청을 찢을 듯한 고음이 건물 전체를 뒤흔든다. 현대무용.영화.뮤지컬이 뒤섞인 퓨전 공연물 '나 심청'에 출연하는 뮤지컬 배우 이태원(39)씨의 노랫소리다.

심청이 어머니의 업보 때문에 아버지에게 겁탈당한 뒤 인당수에 뛰어들어 죽는다는 다소 생뚱맞은 줄거리의 이 공연에서 이씨는 전생에 '폼페이 창녀'였다는 심청의 어머니 역할을 맡는다.

'배우 이태원'하면 뮤지컬 '명성황후'속 비운의 국모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겐 자못 충격일 터이다.

"제가 1997년부터 '명성황후' 무대에 무려 600회나 섰잖아요. 왕비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택한 작품인데 창녀 역할은 너무 파격인가요? 생전 처음 록음악에 랩까지 소화하려니 힘드네요."

2, 3일 이틀 동안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이번 작품을 위해 그는 한달반 동안 연습실에서 땀을 흘리며 강행군을 해왔다.

"10, 12일엔 호암아트홀에서 클래식 연주자들과 함께 '러브 어페어 콘서트'가 예정돼 있고, 다음달 초부터는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에서 원장 수녀 역으로 출연해요. 세 작품을 준비하느라 올 여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절규하듯 하드 록을 부르는 창녀에서, 헨델의 '울게 하소서'와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노래하는 소프라노로, 코믹한 연기를 펼치는 엽기 수녀로…. 올 가을 펼쳐질 그의 변신이 기대된다.

"원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길 좋아해요. 성악을 전공(미국 줄리아드 음악학교와 피바디 음대 대학원 졸업)했지만 뮤지컬 배우의 길을 택한 것도 그렇고, 일면식도 없던 연출가 윤호진씨에게 전화해 '명성황후 역을 내게 맡겨 달라'고 조른 것도 그렇고요."

사랑도 그랬다. 이씨는 지난해 4월 네살 연하의 배우 방정식(35)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99년 뮤지컬 '페임'의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이씨)과 오디션 참가자(방씨)로 처음 만났다. 방씨는 '나 심청'에서 심청의 전생으로 설정된 '남자 심청'역을 맡아 부부가 한 무대에 선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선 원장 수녀와 우편배달부 소년으로 만나기도 했다.

"배우끼리 사니까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웬만한 건 '예술'의 이름으로 다 이해가 되죠."

이씨의 욕심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나이가 더 들면 토크쇼 사회자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말하는 걸 워낙 좋아하거든요." 그는 통통 튀는 고무공 같은 여자였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박상훈 사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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