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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성추행 네 번 … 여군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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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군 장교인 해군 A중위(26)는 지난해 임관했다. 제복이 멋있고, 무엇보다 나라 지키는 일을 평생 업(業)으로 삼는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하지만 18개월이 지난 지금 A중위의 가장 큰 걱정은 북한의 동태나 훈련 상황이 아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 직속상관의 징계, 부대 내 따가운 시선들, 무엇보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자신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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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A중위는 임관 2년 차인 올 한 해 동안 세 차례나 근무지를 옮겼다. 서류에 적힌 인사이동 사유는 ‘본인 희망’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 무려 네 차례의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의 결과다.

 시작은 지난해 12월. 부대 직속상관인 한모 소령으로부터 각종 성적 폭언을 들었다. 남자의 성기를 언급하는 표현도 있었다. 함대 상급자에게 보고하면 시정될 줄 알았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지난 3월에는 또 다른 직속상관인 김모 대위가 훈련 중 함 내 여군 침실로 무단 침입해 A중위에게 입맞춤을 시도했다. 그제야 군 당국은 진상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A중위는 여전히 가해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부대에서 근무해야 했다. 결국 견디기 어려웠던 A중위는 전출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후 전남 모 부대로 옮겼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선임인 김모 중위는 ‘룸살롱’을 언급하며 성희롱을 하는가 하면, A중위의 인터넷 메신저를 무단으로 열람했다. 또다시 옮겨 간 모 부대에서 그는 직속상관인 임모 중령에게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운명은 잔인했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던 임 중령은 술자리 동석을 강요하는가 하면 일대일 면담을 하자고 한 뒤 “네덜란드에서는 집창촌이 허용돼 좋은 볼거리가 많다” "독일은 수위 높은 포르노가 공짜다”라는 등 성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보다 못한 제3자가 신고해 조사가 시작됐지만 A중위의 심신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군생활을 각종 조사와 재판으로 허비했다. 최근에도 A중위는 휴가를 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했다.

A중위는 지인에게 “나라를 지키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멋있고 당당한 군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여성 부사관 출신인 손인춘 의원은 16일 “전국 각 부대에서 이 같은 일을 겪는 여군들이 많다. 보복이 두려워 입을 닫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여군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를 본 여군 860명 중 38.2%가 성희롱을 당할 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매번 ‘솜방망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처벌도 문제다.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실에 따르면 여군 범죄는 매년 늘고 있지만 최근 5년간 ‘여군 대상 성군기 위반사건’의 가해자 160명 중 123명이 경징계에 그쳤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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