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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대표 감독 승부조작 연루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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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대회 2연패를 이루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한 일본 축구대표팀이 날벼락을 맞았다. 하비에르 아기레(56·멕시코·사진) 감독이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사라고사를 이끌던 시절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루머가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스페인 검찰은 지난 2011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발생한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아기레 감독을 포함해 사라고사 구단 임원과 전·현직 선수 등 41명을 16일 기소했다. 아기레 감독은 2010~2011시즌 막판 사라고사와 레반테의 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우리가 이기도록 도와 달라”며 레반테 선수들에게 96만5000유로(13억원)를 건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경기를 앞두고 강등권인 18위에 머물던 사라고사는 주전 5명을 뺀 레반테에 2-1로 승리했고, 13위로 시즌을 마쳐 2부리그로 강등될 위기에서 벗어났다.

 당시 상황을 수사한 알레한드로 루손 검사는 “사라고사 구단 운영진이 아기레 감독과 두 선수 안데르 에레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가브리엘 페르난데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통해 돈을 나눠 건넨 정황을 포착했다. 나중에 있을지 모를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주요 피의자로 지목한 아기레 감독은 조만간 스페인 검찰이나 법원의 소환 명령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간 “나는 결백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아기레 감독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일본 축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15일 아시안컵 23명 최종엔트리 발표 행사를 치른지 하루 만에 스페인 검찰이 아기레 감독을 기소하자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았다. 산케이스포츠는 아기레 변호인의 말을 인용해 “스페인 검찰이나 법원의 소환 요구는 아시안컵 이후인 2월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면서도 “(아기레 감독이) 아시안컵을 지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대표팀의 명예를 떨어뜨린 만큼 해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본축구계는 벌써부터 대표팀 감독 교체와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다. 아시안컵 때문만은 아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내년 여름부터 시작하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도 악영향이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산케이스포츠는 “혐의가 없더라도 대표팀 감독 업무에 지장이 있으면 곤란하다”는 일본축구협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조속한 감독 교체를 주장했다. 이 신문은 또 “아시안컵은 2016 리우 올림픽을 준비 중인 데구라모리 마코토(47) 21세 이하 대표팀 감독에게 임시로 맡기면 된다”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재일 축구칼럼니스트 신무광 씨는 “명분과 책임을 중시하는 일본 문화의 특성상 아기레 감독이 물러나면 일본축구협회 전무이사와 기술위원장 등 선임 과정에 참여한 인사들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이 크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아기레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종료 직후 일본축구협회와 연봉 180만 유로(24억8000만원)에 4년 계약을 맺었다. 역대 일본대표팀 감독 중 최고액이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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