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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박 쏟아져도 뛰었다 … '배고픈 선수들' 생존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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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제주도에 내려간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눈·우박이 내리는 악천후에도 최종명단에 뽑히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황의조·홍철·김민혁·김성준·이용재·이재성·정성룡(왼쪽부터) 등 선수들이 16일 서귀포 시민축구장에서 눈을 맞으며 뛰고 있다. [제주=뉴시스]
강추위에 중무장을 한 슈틸리케 감독. [제주=뉴시스]

아시안컵 훈련을 위해 따뜻한 남쪽 섬을 찾아 내려온 축구 국가대표팀. 그러나 이들을 맞은 건 제주 서귀포의 칼바람이었다. 강한 바람에다 눈·비까지 섞여내리는 을씨년스런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16일 서귀포에는 오후부터 내린 눈이 시간이 갈수록 굵어지고, 강한 바람까지 불면서 체감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러나 서귀포는 지금 어느 때보다 뜨겁다. 15일부터 1주일 일정으로 전지훈련 중인 축구대표팀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선수들 때문에 훈련장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박건하(43) 대표팀 코치가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뛰어서 다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할 정도다.

 이번에 소집된 대표팀 28명 가운데 처음 태극마크를 단 선수가 14명이나 된다. 새내기 선수가 단번에 주전급으로 발탁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울리 슈틸리케(60) 대표팀 감독의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꿨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0일 전지훈련을 앞두고 “우리 팀엔 배고픈 선수가 필요하다. 열정이 있는 선수라면 나이·경험에 관계없이 발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 첫날에도 “대표팀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면서 새내기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제주 전지훈련을 마친 직후인 22일에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에 출전할 최종엔트리 23명 명단을 발표한다.

 훈련 초반이지만 ‘배고픈 선수들’은 진지한 자세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훈련 첫날부터 몸싸움과 태클을 마다하지 않았다. 실전과 다름없는 훈련 분위기 속에 선수들 사이에 고성까지 오갔다. 첫날 미니게임에서는 강수일(27·포항)·정동호(24·울산)·김은선(26·수원) 등 공교롭게도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선수들이 골을 넣었다. 둘째날 미니게임에서도 처음 대표팀에 뽑힌 이종호(22·전남)가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터트렸다. 날카로운 크로스로 이종호의 골을 도운 임창우(22·대전) 역시 대표팀 새내기다.

 대표팀은 16일 오전·오후에 걸쳐 총 3시간30분동안 체력·전술 훈련, 미니게임을 소화했다. 훈련 도중 우박이 쏟아졌지만 선수들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 중에 웃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표팀 최고참 차두리(34·서울)도 몸을 날렸다. “대표팀에서의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던 차두리는 “후배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펼치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시즌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배고픈 선수들은 일찌감치 대표팀 훈련을 준비했다. 흑인 혼혈로는 처음 뽑힌 강수일은 소집을 앞두고 개인 훈련을 하며 몸을 만들었다. 대표팀에 합류한 강수일은 미니게임에서 거침없는 몸싸움과 공간을 활용하는 지능적인 플레이로 슈틸리케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강수일은 자신의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에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문구와 함께 태극기 사진을 올려놨다. “내게는 절실함과 배고픔 밖에 없다”던 강수일은 “대표팀 유니폼을 처음 입어봤다. 잘 어울리더라. 이 옷을 쉽게 벗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강수일의 포지션인 공격수는 이번 대표팀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강수일을 비롯해 이종호·이용재(23·나가사키)·이정협(23·상주)·황의조(22·성남) 등 5명 모두 처음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이동국(35·전북)·김신욱(26·울산)이 부상으로 빠졌고, 박주영(29·알 샤밥)이 부진한 만큼 새내기들이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부상으로 빠진 김승대(23·포항)를 대신해 뽑힌 이종호는 “대체 선수로 뽑혔지만 놓치기 싫은 기회다. 기회를 꼭 잡아 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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