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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골든타임이 지나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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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 2014년은 저물어 가는데 경제가 살아날 길은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지도에 없는 길’을 나섰던 최경환 경제팀은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한 해를 마감하게 생겼다. 올해 성장 목표 달성은 이미 물 건너갔고,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도 낮춰 잡아야 할 지경이다. 겨우 살아날 듯하던 부동산 시장은 반짝 회복 후에 전셋값만 다락같이 올려놓은 채 도로 침체에 빠졌다. 한 번 힘을 잃은 소비는 영 살아날 기미를 보이질 않고, 얼어붙은 투자는 매서운 한파 속에 더욱 움츠러들었다. 내수 부진에 더해 연말이 가까워 올수록 그동안 경제를 힘겹게 끌고 왔던 수출마저 위축되기 시작했다. 내수와 수출 두 바퀴로 내달려도 시원찮은 판에 그나마 굴러가던 수출의 외바퀴마저 삐걱거리게 됐으니 조만간 한국 경제라는 수레는 추진력을 잃고 주저앉을 것처럼 위태롭다.

 여기다 경제 회복의 고비마다 발목을 잡아온 국회는 그나마 해보겠다는 경제살리기 법안 하나 처리하지 못한 채 정쟁으로 연말의 마지막 회기를 허송하고 있다. 대통령 측근을 둘러싼 ‘허접한 문건’과 그 문건의 한심한 유출 경위를 놓고 온 나라가 법석을 떠는 사이 경제를 살려보자는 대통령의 호소는 공허하게 허공을 맴돈다. 경제 회복의 첨병을 자처하던 최경환 부총리는 전 정부 시절의 부실 자원외교를 해명하러 다니기 바쁘고, 그나마 문건 파동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한국 경제 회복의 골든 타임(Golden Time)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골든 타임이 뭔가. 사고나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인명을 구조하는 데 결정적인 초반의 금쪽 같은 시간을 말한다. 인명 구조에 골든 타임이 있다면 경제를 살리는 데도 적기(適期)가 있다. 이 결정적 시간을 놓치면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어렵고, 경제를 회복시키기도 어려운 것이다. 호흡이 멎을 정도로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는 일단 심폐소생술로 호흡과 심장박동을 돌려놓은 뒤 근본적인 원인치료를 하는 게 순서다. 처음의 응급처치를 못하면 환자를 살릴 가망이 아예 없어지고, 나중에 원인치료를 제대로 못해도 환자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어렵다. 이를 경제에 빗대면 경제가 자력으로 일어서기 어려울 만큼 위기에 빠졌으면 긴급한 부양책을 써서라도 일단 경기를 살려놓고, 경제체질의 개선이나 구조조정 같은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그랬다.

 문제는 지금이 그 정도의 위기상황이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경제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견이 적지 않다. 혹자는 경기가 너무 죽어있으니 일단 긴급한 부양책을 써본 후 경기가 어느 정도 살아나면 본격적인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한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작금의 경기 침체가 앞서 두 차례의 위기만큼 긴박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단기부양책보다는 구조 개혁을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경환표 해법은 사실 전자에 가깝다. 일단 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을 통해 올해 하반기까지 경기를 회복시킨 후 내년부터 본격적인 구조 개혁에 돌입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단기부양책의 약발이 도무지 듣지 않고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도처에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초이노믹스는 이미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가 하면, 이제는 부양책을 접고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최경환 경제팀의 단기부양책은 제대로 펼쳐진 적도 없고, 그 결과 경기가 살아나지도 않았다. 재정자금을 더 푼 것도 별로 없고, 금융 쪽에서도 금리를 내렸지만 돈이 돌지 않으니 부양 효과를 거두지도 못한 것이다. 그나마 용을 써봤던 부동산 대책도 국회의 입법처리 지연에 가로막혀 약발이 소진됐다. 그러니 단기부양책에 빠져 구조 개혁을 못 한 것이 패착이라는 지적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저성장이다. 여기에는 경기순환적인 침체요인과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발전 단계상의 구조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단기적인 침체를 방치할 수도 없고, 경제의 구조 개선에 손을 놓을 수도 없는 것이다. 경기 침체를 그대로 두면 경제 회생의 추진력을 잃고,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잃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과 구조적인 경제체질 개선을 선택적으로 구분해 별개로 추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단기적인 부양책과 중·장기적인 구조 개혁을 병행하자는 것이다.

 저성장의 고착화를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자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고 말면 한국 경제는 영영 다시 일어서기 어렵고, 그래도 무언가 시도라도 해본다면 지금이야말로 경제 회생과 구조 개선의 골든 타임이다. 이제 최경환 경제팀에 주어진 과제는 얼마 남지 않은 경제의 골든 타임에 경기 회복과 구조 개선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교한 마스터플랜을 짜서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산발적으로 개별 정책을 남발할 게 아니라, 경기 회복과 구조 개선이 서로 연계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럴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