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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중·일 '데탕트' 를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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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다카하라 아키오(高原明生)
도쿄대 교수

지난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회담했다. 시진핑 주석은 무표정했다. 양국 정상의 첫 회담은 25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회담은 중·일 관계의 전환점이 됐다. 동중국해에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긴장을 딛고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중국 정부는 최근 수개월간 일본에 강력한 항의를 표출했다. 중국은 중·일 회담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이 필요했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아베 총리와 만나기 전에 엄격한 조건을 일방적으로 제시했다. 양국 간에 영토분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본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아베 총리가 더 이상 참배해선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회담 직전 양측은 여러 의미로 편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교묘한 합의안을 영리하게 도출해냈다. 동중국해 긴장에 대해 중국과 일본의 견해가 서로 다르다는 선언이었다. 중국 입장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요구대로 일본이 영토분쟁을 인정했다고 해석하고, 일본에선 그렇지 않다고 국민에게 주장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야스쿠니는 언급되지 않았다.)

 ‘건설적인’ 모호함에 도달한 것은 양국 정상의 공로다. 양국은 동아시아 긴장 완화를 위한 책임 있는 걸음을 함께 내디뎠다. 특히 아베 총리는 일부 지지자에게 점수를 잃을지 몰라도 시 주석보다 자신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사실을 계산에 넣었다. 시 주석은 군사·외교 수뇌부 내부의 강경파·온건파 대립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국은 종종 센카쿠 인근 해역에 순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본 국민은 중국의 도발과 안보 문제에 강경 대응을 지지한다. 이번 여름에 일본 비정부단체인 언론NPO와 중국의 중국일보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일본 응답자의 93%가 중국을 좋게 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일본 국민 다수는 중국이 일본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웃 나라라는 사실을 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일본 응답자의 70%는 중·일 관계가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80%는 현재 상태에 우려를 표명하며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런 여론을 잘 읽고 있다.

 아베 총리는 시 주석이 자신보다 더 미묘한 처지라는 것도 알고 있다. 중·일 갈등은 중국에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 중국 상무부 자료를 보면 2014년 1~6월 일본의 중국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가오후청(高虎城) 상무부장은 지난 9월 일본 기업가 대표단에 “양국 갈등이 경제 관계를 해치며 이는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한 권력 기반이 없으면 대일 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이 중국 정치의 일반 원칙이다. 중국 지도부는 부족한 정당성을 메우고 당과 국민을 단결시키기 위해 민족주의 열정을 활용한다. 특히 군부와 선전부의 단골 공격 대상은 일본이다. 지난달 양국 정상의 역사적 악수에 대해 중국 언론이 미지근하게 보도한 것을 보면, 시 주석은 아직 중·일 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입지를 구축하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회담 중 아베 총리는 네 가지 사안에서 협력이 가능하다는 뜻을 시 주석에게 전했다. 동중국해 공동 협력 강화(2008년 유전·가스전 공동개발 합의 이행), 경제 관계 심화, 보다 높은 수준의 동아시아 안보환경 안정, 그리고 무엇보다 상호이해 개선이다.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의 악수로 답보 상태에 있던 ‘중·일 메콩 정책 대화’와 ‘신(新) 일·중 우호21세기위원회’ 회담이 최근 베이징에서 열렸다. ‘신 일·중 우호21세기위원회’는 양국 총리의 자문기구로 활동하는 비정치인들이 패널이다. 필자는 일본 측 사무총장이다. 우리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2013년 5월 취임 후 최초로 접견한 일본 단체가 됐다. 우리는 그해 12월 초 회의에서 동중국해 충돌을 막기 위한 위기관리 메커니즘 수립 등 양국관계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제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은 양국 국민에게 협력의 가시적 혜택을 보여줘야만 한다. 이를 위해선 희망적 조짐을 보여주는 사례를 먼저 알려야 한다. 일례로 중국과 일본은 에너지 보존이나 공해 방지를 포함한 경제 및 비전통적 안보 문제에서 이미 협력하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중국 상선을 보호하는 것은 일본 해상자위대다. 일본 정부는 중국 학교와 NGO에 상당한 기술 원조와 지원금을 제공한다. 일본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의 증가도 기록적이다.

 ‘신 일·중 우호21세기위원회’는 청년 교류 프로그램의 강화 방안도 논의했다. 본 프로그램에 따라 2007년 이후 중국 등 아태지역 청년 3만 명이 일본을 방문했다. 사소해 보여도 이런 인적 교류는 상호 오해를 풀고 양국의 역학 관계를 바꿔놓을 수 있다.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이 기득권 세력의 민족주의 압력을 극복하려면 양국 국민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만큼 값진 것도 없다.

다카하라 아키오(高原明生)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