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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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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2014년을 보름여 남겨두고 한 해를 돌아보는 결산이 한창이다. 문화부에서 출판을 담당하는 탓에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우아한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뭔가요?” 개인적으로도 근 10년 사이 가장 많은 책을 읽은 한 해였다(일이 일인지라). 아무도 물어보지 않기에 자발적으로 꼽아본다. 올 한 해 메마른 출판기자의 영혼을 촉촉히 적셔준 3권의 책.

 최근 출간작 중엔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가 좋았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의 사상을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로 푼 책이다.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과제 분리’와 ‘수평관계’다. 아들러는 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개입하지 말고, 나의 과제에 누구도 끌어들이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게 독립된 개인들이 ‘수평관계’를 맺고 사는 곳이 세상이다. 사람들은 평평한 땅 위를 저마다의 보폭으로 걷고 있을 뿐, 누구도 누구의 위에 서 있지 않다. 그러니 타인에게 폭언은 물론 칭찬도 하지 말라고 그는 조언한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행위는 자신이 우월하다는 의식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칭찬 대신 ‘큰 도움이 됐다’ ‘아주 기쁘다’ 등의 감정표현으로 족하다) 세상은 수직이며, 자신이 그 꼭대기에 서 있다고 믿었을 ‘땅콩 부사장’님께 권해 본다.

 봄에 읽은 『행복의 기원』(21세기북스)에도 큰 위로를 받았다. 행복학자 서은국 교수의 이 책엔 밑줄 그을 문장이 무수하지만, 이 대목에 꽂혔다. ‘행복은 유전자가 결정한다.’ 어떤 인간이 행복하냐 그렇지 않냐는 유전자에 새겨진 성격(구체적으로 외향성)에 상당 부분(약 50%) 기인한다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어렵다”고 말한 학자도 있다. 왜 행복하지 않을까,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올해 가장 나를 웃긴 책은 만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세미콜론)이다. 마흔 넘어 “만화가가 되겠다”며 사표를 던진 아저씨가 주인공. 큰 뜻을 품었는데, 왠지 사정없이 빈둥댄다. 공모전에 낙방하면 “나는 대기만성 대기만성” 주문을 왼다. “인생이 80년이라면 견딜 수 없지. 300년이라 상상하면 인생은 장밋빛. 아직 나에겐 258년이 남았다. 서두를 필요 없어.”

 올해도 대업을 이루지 못했는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에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내년이 기다린다. 그러니 연말까진 맘껏 게으름을 피우도록 하자.(응?)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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