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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린 지 10년 … 동토에도 시장경제의 싹 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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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호 01면

SJ테크 이규용 본부장. 2006년 선죽교에서.

“김 반장, 우리 처음 봤을 땐 앳된 소녀였는데 벌써 애 엄마가 됐나?”

개성공단 10년, 과거 그리고 미래 #北 직원, 10년간 같은 일해 숙련도 최상급 … 깜짝 아이디어 제안도

“아이고, 그러믄요. 제가 여기 들어온 지 벌써 10년이 다 됐습네다.”

“벌써 10년이군. 애는 유치원 다니겠네?”

“유치원 높은 반(2년째) 다닙네다. 김장하는 데 계속 놀자 해서 몇 포기 못 담갔습네다.”

개성에서 나고 자란 김 반장(가명)은 서울의 여느 30대 여성과 다를 게 없다. 김 반장이 일하는 부품소재 기업 SJ테크의 이규용 본부장은 “김 반장이나 나나 애들 교육하고, 먹고사는 것 걱정하는 소시민”이라고 말했다.

황해북도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업지구.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반 떨어진 이곳에서 2004년 12월 15일 첫 완제품(스테인리스 냄비세트)이 출하된 지 10년이 됐다. 그동안 크고 작은 남북관계·외교안보의 갈등이 있었지만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남과 북의 근로자들에겐 외면하고 싶은 현실일 뿐이다. 이 본부장은 “좋은 제품 만들어 저희도 돈 벌고 북의 근로자들도 잘 살고….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SJ테크는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개성에 법인을 설립했다. 이 본부장은 2006~2008년 개성 현지에 상주하며 일했고, 그 후에도 북한이 발급한 장기체류증을 가지고 남북을 수시로 오가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처음 넘을 때 긴장이 됐을 법도 하다. 이 본부장의 답변은 정반대다.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북한에도 우리 회사가 있다고 생각하니 들뜬 마음뿐이었습니다.”

개성 주재원들은 보통 월요일에 개성으로 출근해 금요일 오후에 서울로 돌아온다. 이 본부장은 “첫 한 주를 지내고 금요일 오후에 서울로 돌아오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졸음이 쏟아져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말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지만 북한 생활은 역시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다.

경제학 서적엔 이론적으로 시장경제와 계획경제가 다르다고 나와 있지만 그걸 실제로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다. SJ테크는 개성 진출 초기부터 북한 직원들에게 대부분의 업무를 맡겼다. 처음에는 걱정도 했지만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개성 주재원은 몇 명 안 되고 유사시에는 현지 직원들이 공장을 끌고 가야 했다. 거의 모든 업무를 북한 근로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여기저기서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다.

북한 직원들은 재고 관리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용접을 하다 용접용 가스가 떨어질 만하면 미리 가스를 주문해야 했는데 그런 생각을 못했다. 가스가 다 떨어져 재고가 없을 때까지 용접을 했다. 북한 직원들은 용접용 가스가 떨어져야 연락을 해 왔다. “아니, 수량 조절도 못 하나.” 인천 본사에선 이해할 수 없었다. 가만 보니 북한 직원들은 가스가 떨어지면 일도 끝난다는 사고방식이었다. 그래서 재고 관리방법을 가르쳐 줬다.

“일을 시작할 때 두 통을 주문해 놓고 한 통을 다 쓰면 연락을 해서 또 한 통을 주문하라.”

이런 일도 있었다. 공장 입구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기에 지나가는 직원에게 치우라고 했다. 그 직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은가.” 그런데 미화반장에게 전화를 걸어 쓰레기 얘기를 하자 금방 깔끔하게 치워졌다. 그들은 맡은 업무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직속 상사가 아니면 명령을 따를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직원들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호의적이다. 이 본부장은 “웬만한 한국 직원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년 동안 같은 일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만두거나 새로 채용된 직원도 없다. 최근엔 공장의 한 반장급 북한 직원이 “열처리 공정의 센서와 컴퓨터를 연결해 체계적인 품질 관리를 하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남쪽의 경영진은 북한 직원의 진취적인 제안에 감탄했다. 그 직원은 지난 10년 동안 프로그래밍, 센서 관리, 기판 설계 업무를 다 경험했다. 지금까지 배운 걸 전부 모아 새로운 열처리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창조적인 발상이었다.

북한 직원들이 개성공단 내 다른 업체의 북한 직원들과 협업을 하기도 한다. 한 번은 소방방재대책 보고서를 만들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북한 직원이 인천 본사 것보다 더 세련된 보고서를 만들어 왔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옆 회사에 갔더니 자기들도 그런 대책을 만든 적이 있다고 해서 이를 토대로 우리에 맞게 만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북한 직원들의 적응력은 매번 남한 경영진을 놀라게 한다.

현재 SJ테크의 개성 공장엔 남한 주재원 4명과 북한 직원 397명이 있다. 개성공단 전체엔 125개의 남한 기업이 있고 5만3000여 명의 북한 직원이 일하고 있다. 섬유봉제 업체의 경우 100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한 곳도 있다. 남한 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 사이의 마찰은 불가피하다. 한 번은 북한 공장장이 새로 임명된 남한 법인장과 상의 없이 직원 인사를 했다. 남한 법인장은 화가 났지만 언쟁을 벌이는 대신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을 해 봤다. 북한 공장장은 법인장 교체시기에 인사를 낸 것이었고, 인사 자체는 타당한 것이었다. 회사 사장은 “공장장과 법인장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나는 공장장 편을 들겠다. 하지만 협의 없이 일을 진행해선 안 된다”며 양쪽의 손을 모두 들어 줬다. 이 일 이후 공장장과 법인장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회사에 따라서는 남북한 직원끼리 언쟁을 벌이는 경우도 발생한다. 외국에서 일하는 것처럼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 북한 말로 ‘호환성(융통성)’이 좋아야 개성공단에서 탈 없이 일할 수 있다.

개성공단 설립 초기에는 남북한 직원들이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남한 직원들이 개성시내에 관광을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 식사도 함께하지 않는다. 서로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이 본부장은 “초기엔 두 집단이 어떻게 같이 생활해야 하는지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고, 지금은 체계가 잡혀서 그렇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북한 직원은 불러도 꼭 두 명씩 온다. 나중에 해명해야 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공단 내에서 길을 걸을 때도 두 명씩 걸어 다닌다.

이 본부장의 대학생 아들은 “시각이 다른 남북이 통일하자고 하면 반드시 분쟁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저도 개성공단에 들어가 일하기 전엔 남북 관계에 대해 원론적인 얘기를 했죠. 하지만 지금은 남북의 화합이 저의 밥줄이 됐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이 남북 화합에 매달리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통일이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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